봉화군과 베트남 리 왕조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2)

지난 5월 3일 봉화군 교류단과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 관계자들이 환영 만찬을 함께 했다.

불과 50~60년 전엔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적과 적으로 만났다. 하지만 엄혹했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국가들 사이에 실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보편화되면서 한국과 베트남은 이제 ‘친구 이상의 나라’가 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다.

짙푸른 바다가 유혹하는 베트남의 유명 관광지 다낭(Da Nang)을 찾는 한국 여행자는 한 해에 100만 명. 그중엔 경북도민도 수없이 많다.

허니, 베트남어보다 한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그곳을 ‘경상북도 다낭시(市)’ 혹은 ‘경상북도 다낭군(郡)’이라 부르는 농담까지 나오는 상황.

뿐 아니다. 근래에 들어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베트남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노동 가능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한국 농촌에서 노인들을 대신해 각종 농작물의 파종과 수확을 도와주는 베트남 계절근로자 역시 봉화군을 포함한 경북 전역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봉화군이 진행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이런 흐름 속에서 기획됐다. 여기에 봉화군은 베트남과 관련된 주요한 유적지까지 가졌으니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를 상징할 공간을 우리 고장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명분이 충분하다.

글 싣는 순서

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
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
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
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
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나라’·농번기엔 경북 어디서나 베트남 계절근로자 흔해

몽골에 맞선 이용상 후손 이장발도 임진왜란 때 전장 달려가 문경새재서 전사

봉화군·뜨선시 충효 전통 비슷… 800년 전 인연의 끈이어 ‘베트남 마을’ 구체화

뜨선시 방문에 살가운 환대 건축물 자문 약속·하반기엔 문화교류 공연단 파견

◆봉화 충효당(奉化 忠孝堂)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의미

800여 년 전. 베트남 북부를 통치하던 리 왕조의 직계 후손 중 일부가 정치적 박해를 피해 고려로 망명한다. 고려 왕실은 이들을 깍듯한 예법으로 받아들여 우리 땅의 일원으로 살게 했다. 그들이 바로 ‘화산 이씨(花山 李氏)’다.

봉화엔 화산 이씨 장발(長發)의 강직한 품성과 애국심을 기려 세운 유적이 있다. 이름하여 충효당. ‘두산백과’는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자리한 이곳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로 1750년경 후손과 유림에서 조선 선조 때 사람인 이장발(1574~1592)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했다. 이장발의 자는 영백(榮伯)으로, 어려서부터 재질과 의지가 굳어 배움에 부지런했고 효성이 지극했다.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열아홉 어린 나이에 편모슬하의 가장이면서도 망설임 없이 전장으로 달려가 문경새재에서 혈전 끝에 전사했다. 죽기 바로 직전에 못다 한 충효의 마음을 읊은 시를 남겨 후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다. 나라에서 순국의 공을 치하하고자 공조참의의 직위를 추증하고 출생지인 봉성면 창평리에 ‘충효당 화산 이공 유허비’를 세우고 충효각을 지었다. 충효각은 정자 뒤편에 있다.”

사선을 넘어 베트남에서 고려로 왔을 때 따스하게 맞아준 은혜를 잊지 않고, 목숨을 걸어 ‘제2의 고향’이라 할 고려와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화산 이씨’는 이장발만이 아니었다.

리 왕조의 직계손이자 ‘화산 이씨’ 시조인 이용상(李龍祥·리 왕조 6대 왕의 일곱 번째 아들) 역시 고려를 침탈한 몽골 군대에 용맹하게 맞섰다. 다시 ‘두산백과’를 인용한다. 이런 내용이다.

“1253년 12월.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이 정착해 살던 웅진성 동쪽 화산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토성과 목책을 쌓아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이에 고려 고종은 이용상에게 관직을 내리고, 옹진 화산 지역 30리 인근과 식읍 2천호를 선사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제수를 내리고, 화산관(花山館)의 문미에 수강문(受降門)이란 글자를 써주기도 했다.”

 

지난 2019년 봉화 충효당을 찾아온 박린성 우호교류단.
지난 2019년 봉화 충효당을 찾아온 박린성 우호교류단.

◆봉화군과 리 왕조의 태동지 박린성 뜨선시의 공통점

충효의 정신과 인간 사이의 예법을 중시하는 건 긍정적 측면에서의 유교적 전통이다. 봉화군은 아직 그런 전통이 남아있는 고장. 이는 베트남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기자는 지난 4월에 봉화 충효당을, 5월 초순엔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市)를 찾았다.

충효당 앞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말과 뜨선시 덴도((DO-temple)축제 현장에서 만난 ‘화산 이씨 종친회’ 이훈 회장의 이야기는 그 뜻이 서로 통했다. 요약해 전달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어른을 공경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걸 높은 가치로 여긴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섰던 선열을 존중하고, 부모를 극진히 모신 효자, 효녀에 얽힌 설화가 흔한 건 두 나라가 비슷하다.”

그런 소프트웨어의 동질성 때문일까? 충효당이 위치한 봉화군 봉선면과 리 왕조가 시작을 알린 뜨선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외부적 환경, 즉 하드웨어까지 닮아있었다.

2023년 초여름 현재. 봉화군은 충효당 일원에 베트남마을을 조성하는 사업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 실증하듯 지난 1일엔 5일간의 일정으로 박현국 봉화군수를 단장으로 한 ‘봉화군 교류단’이 리 왕조의 발원 지역인 뜨선시를 방문했다.

여기엔 봉화군의회 김상희 의장과 박동교 부의장 등도 동행했다. 올해 봉화군의 주요 시책 중 하나인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베트남 정부와 박린성, 뜨선시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방문 일정을 리 왕조 건국을 기념하는 덴도축제 기간에 맞춘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 이 일정을 취재하며 직접 확인한 뜨선시의 환대는 800년 전 이용상을 받아들인 고려 왕실의 그것처럼 살가웠다.

지난 5월 3일 저녁. 맛깔스런 베트남 전통요리로 차려진 환영 만찬을 준비한 뜨선시 측에선 건축을 전공한 황 바 휘 시장이 봉화 베트남마을에 들어설 건축물에 관한 자문을 약속했고, 부엉 꾸억 투언 박린성 부성장(한국의 부지사격)은 한국-베트남 문화교류를 위해 올 하반기 공연단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덴도축제 무대에 오른 화산 이씨 종친회 이훈 회장.(우측)
덴도축제 무대에 오른 화산 이씨 종친회 이훈 회장.(우측)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한 결과물로 만들어질 베트남마을

이날 봉화군 교류단은 베트남 리 왕조의 후손 ‘화산 이씨’와 관련된 유적지인 충효당 일대에 베트남마을이 만들어져야 하는 당위성을 박린성과 뜨선시 관계자들에게 설명했다.

“역사·문화·휴양을 테마로 한 베트남역사관, 전통공연장, 연수·숙박·교육시설, 정원 등을 조성하기 위해 국비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에 만찬에 참석한 베트남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사실 이번 자리가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봉화군과 박린성, 봉화군과 뜨선시 간의 교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지난 2018년엔 봉화군 관계자들이 응웬 티 킴 응언 베트남 국회의장을 만나 베트남마을 조성에 협조를 부탁했고, 2019년에는 응구옌 투 꾸인 박린성 인민위원장(한국의 도지사격)을 단장으로 하는 우호교류단이 봉화군을 찾아 충효당을 둘러봤다. 베트남마을 조성 예정지를 미리 살핀 것.

설화 또는, 전설처럼 전해오는 인연을 귀하게 여겨 그 끈을 놓치지 않은 베트남 리 왕조와의 교류는 8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의 구체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박순교 경북대 특임연구원의 논문 ‘花山君 李龍祥(화산군 이용상)에 관한 연구’는 한국과 베트남, 미시적으로 봉화군과 뜨선시 사이 우호의 출발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대월(리 왕조) 출신 이용상은 고려 고종 치세에 송나라를 거쳐 고려로 이거했다. 황해도 웅진 화산에 정착한 그는 얼마 뒤 몽골의 침입을 격퇴한 공으로 고려 조정으로부터 화산군에 책봉되었고,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리 왕조의 혈손인 그의 존재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 선린의 가교이자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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