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인공 모래섬에 둥지 튼 안동호 ‘쇠제비갈매기’ 서식지 찾아 가 보니…
낙동강 보 수문 개방으로
기존 모래섬 물속으로 잠겨
시, 물 위에 인공 구조물 만들어
모래 120t 깔고 조형물 등 설치
물고기 잡거나 암컷에 구애도
짝짓기 마친 새들 2~3개 알 낳아

국내 처음으로 인공 모래섬에서 서식하는데 성공한 멸종 위기종인 쇠제비갈매기가 안동호 인공 모래섬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안동시 제공

“와~ 드디어 둥지를 틀기 시작했네요.”

지난 14일 오후 안동호(湖)에서 호수 면적이 가장 넓은 호계섬 주위 상공엔 “삐빅, 삐비빅” 소리를 내는 하얀 새떼로 시끌벅적했다. 탐조(探鳥)용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던 안동시청 공무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의 시야에 나타난 주인공은 까만 정수리에 노란 부리, 하얀 몸통에 회색 날개를 지닌 멸종위기종 바닷새 쇠제비갈매기. 안동시가 쇠제비갈매기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최근 호수 수위가 높아져 대체 서식지로 만든 인공섬에서 번식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새들이 인공섬에서의 번식 여부가 최대 관심사였다. 생태관찰용 CCTV를 통해 확인된 쇠제비갈매기는 70여 마리. 물고기를 잡기 위해 수직으로 곤두박질하거나 잡은 먹이를 암컷에게 넘겨주며 수컷의 구애 장면도 목격됐다. 짝짓기를 마친 일부는 모래 위에 둥지를 틀고 2∼3개씩 알을 낳았다.

사라진 서식지를 대체하는 시도는 국내에서 안동호 사례가 처음이다. 번식 성공은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지난 6일 텅 빈 인공섬에 첫 선발대 격인 쇠제비갈매기 7마리가 찾았다. 하지만 이틀 뒤, 때아닌 4월에 내린 눈으로 인공섬 표면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여름철새인 쇠제비갈매기들에겐 눈은 최악의 악재였다. 퍼즐 조각처럼 플라스틱 구조물을 연결해 만든 것이라서 강풍이 불 때면 인공섬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일렁거렸다. 이 때문인지 새들은 모두 사라졌다.

텅 빈 인공섬엔 며칠간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지난 14일 본진 격인 쇠제비갈비기 무리가 인공섬을 무더기로 찾아 번식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시 공무원들이 환호하는 이유였다.

안동시 안전재난과 김태성 계장은 “내륙 깊은 곳에서 서식하는 것도 특이하지만 인위적으로 조성한 환경에 새, 사람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이뤄낸 결과”라고 말했다.

호주에서 1만㎞를 날아와 4월에서 7월 사이 한국과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서식하는 쇠제비갈매기는 2010년 이후 내륙 호수인 안동댐에서 관찰되기 시작했다. 안동호 작은 모래섬(가로 100m, 폭 20m)에 터를 잡아 알을 낳고 새끼를 길렀다. 빙어 등 먹이가 풍부하고 자연 조성된 모래섬에 천적의 접근이 어렵다 보니 해마다 개체 수도 늘었다. 우리나라 최대 서식지였던 낙동강 하구에선 한때 4천마리 이상 살던 쇠제비갈매기는 천적이나 보(洑) 건설, 사람의 간섭 등 환경 변화로 해마다 개체 수가 줄다가 지난해부터 자취를 감췄다. 학계에선 낙동강 유역에서 안동호 모래섬이 유일한 쇠제비갈매기 집단 서식지로 본다.

하지만 올해 낙동강 보 수문 개방 이후 나타날 수질오염 해결 명목으로 환경부가 안동호에 물을 채우자 서식지에도 문제가 생겼다. 여름 철새인 쇠제비갈매기가 날아들던 안동호의 작은 섬은 최근 수면 10m 아래로 잠긴 것이다.

서식지 일대를 관광자원으로 키워보려던 안동시도 비상이 걸렸다. 시는 서식지 부근에 30억원을 들여 유람선 건조, 전망대, 쇠제비갈매기 조형물, 편의시설 등을 설치할 예정이었다.

이에 시가 내놓은 특단의 대책이 인공 모래섬이었다. 쇠제비갈매기를 위한 인공섬은 지난 3월부터 설치에 들어갔다. 인공섬 설치에는 인근 주민들도 동참했다. ‘귀한 새들을 못 보게 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 안동호 어부 28명은 섬을 물에 띄울 플라스틱 구조물 2천500개(1억원 상당)를 기증했다. 시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물에 뜬 구조물 위에 모래 120t을 깔아 기존 서식지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모래는 주민들이 뭍에서 퍼 담아 등짐으로 날랐다. 인공섬에 12개의 닻을 달아 고정했다.

예민한 새들을 위해 여러 가지 세심한 장치가 마련됐다. 시는 조류학자에게 자문을 해 새끼들이 인공섬으로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경사면을 조성하고 수리부엉이 등 포식자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서식지 적응을 유도하기 위해 쇠제비갈매기와 비슷한 조형물도 설치했다. 음향 장치를 설치해 녹음된 쇠제비갈매기 울음소리를 틀어줬다. 서식지 주변은 오는 7월 말까지 낚시 금지구역으로 지정됐다. 수자원공사는 인공섬 주위 반경 100m에 ‘접근 금지용’ 부이 12개를 설치하는 등 힘을 보탰다.

신동만 KBS 프로듀서(동물생태학박사)는 “낙동강 하구의 대규모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오갈 데 없어진 쇠제비갈매기가 안동호 모래섬을 가장 안전한 서식지로 인식하는 것 같다”며 “사라진 서식지에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 번식을 유도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고 학술적으로 연구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안동호 쇠제비갈매기의 비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신 PD는 지난 21일 프랑스 아베빌에서 열린 ‘제29회 새와 야생동물 페스티벌’에서 야생동물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앞서 이달 초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제52회 휴스턴영화제’에선 자연다큐부문 최고상인 심사위원특별상도 받은 바 있다. /손병현기자why@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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