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지도 벌써 100년이 넘었다. 우리 전통의 미의식과 표현양식에서 서구의 미적 가치를 수용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 이상의 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대구는 서울이 아닌 일본에서 직접 서양화를 배우고 익힌 대구출신 화가들에 의해 보급되고 미술단체가 자의적으로 결성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 결과 대구는 서울, 평양과 함께 우리나라 서양화의 메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서구문화를 대표하는 서양미술이 대구의 화가들에 의해 본격화 되면서 대구는 어느 도시보다 활발한 예술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100여 년 전에 대구미술은 어떤 환경 속에서 수용과 전개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당시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경향과 유작들에 대한 소재
“아빠 선물 사 와.” 너무도 짧은 말에 조금은 서운했다. 물론 4년째 어린이날을 혼자 보내게 해서 미안하지만 몽골로 답사를 가는 아빠에게 “잘 갔다 와!”도 아니고, “선물 사 와!”라니. 그런데 서운한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훨씬 더 커서인지 몽골 사전답사 내내 마음도, 몸도 무거웠다. 지난 주 내내 필자는 이번달 말에 있을 몽골 해외이동수업을 위한 2차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갈 때마다 많은 분들이 그냥 여행사에 위탁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시지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 하는 해외이동수업은 여타 학교들이 하는 해외수학여행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일반 여행사에서는 프로그램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해마다 1월과 5월에 사전답사를 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해외이동수업 주제 역
사드(THAAD)란 `종말(Termina)고고도(hight Altitude) 지역방어(Area Defense)`의 줄임말이다. 일반적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150km의 고도에서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이다. 사드는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이나 노동미사일 방어를 전제로 한다. 스커드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1천km, 노동미사일은 1천300km이며, 속도는 마하 4~5에 달한다. 현재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우리 군의 방어 수단은 패트리엇 요격미사일(Pac-2)이다. 내년에는 패트리엇 요격미사일(Pac-3)이 도입된다고 한다. 패트리엇 미사일은 고도 40km 내외에서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패트리엇 미사일의 단점은 북한의 미사일이 한국의 주요 시설을 타격하
우리경제는 지금 혹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경제현장에서는 지난 IMF외환위기를 뛰어넘는 최악의 수준이라며 아우성이다. 소비심리마저 얼어붙어 서민들의 아랫목 또한 점점 온기를 잃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도 경제전망 또한 그리 밝지 않다. 어수선한 정국에 가려진 우리경제에 대한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포항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철강·조선·제조업 등에 대한 경기전망은 더 어두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역경제가 철강경기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점이다. 불황타개도 급선무이지만 산업다양화로 지역경제의 기초를 튼실하게 다져야하는 일 또한 매우 시급한 과제라는 점에서 포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포항경제의 활력을 견인하는 철강·조선·제조 등의 산업에 대
“이 일만 마치고는 떠나야지….”하는 결심을 되풀이하였으나 번번이 여의치 않아 마침내는 만사를 젖혀두고 우선 떠나고 봐야겠다는 작정을 했다. 양말 몇 개와 세면도구만 챙긴 조그만 종이가방 하나를 달랑 들고 나서고 보니 이토록 간단한 일이 어찌 그리 어려웠던가 싶어 오히려 의아할 지경이었다. 여행! 어떤 이는 여행을 익숙한 지겨움의 탈출이며 매력적인 낯설음과 조우하는 일이라 하였고, 옛 어른들은 `독서만권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를 군자의 덕목이라 하여 독서를 통한 지식이나 지혜의 습득과 여행을 통한 체험의 중요함을 같은 비중으로 생각하였다. 어쨌거나 여행은 개인적인 힐링을 위해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보다 큰 안목을 갖추기 위하여 꼭 필요한 컨설팅이기도 하다. 그만큼 여정에서 얻어지는 체험이 소중한 것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이다. 대선 후보들이 결정되는 순간, 아니 대선 예비 후보들이 거론되면서부터 소위 말하는 인격 난타전이 시작되고 있다. 마치 반칙이 난무하는 3류 스포츠 경기와 같다. 언론은 중계자가 되어 그 모습을 충실히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볼 때마다 화가 나는 이유는 뭘까? 대선전을 중계하는 언론의 내용을 종합해서 가상의 대본을 만들어 보았다. “민주 선수, 국민 선수에게 딸 펀치를 날립니다. 딸 재산 공개라는 쨉을 계속 날립니다. 아, 국민 선수 계속 쨉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쨉도 계속 허용하면 파괴력이 있을 건데요.” “그렇죠, 뭐든 계속 되면 그것이 마치 진짜처럼 보이죠. 혹시 민주 선수의 말처럼 어떤 잘못이 있는 건 아닌가요?” “아, 민주 선수, 이번에는 국민
5월이 되면 어린이날을 축하하기 위한 어린이미술대회가 전국에서 열린다. 필자가 근무하는 쇼핑센터도 40여년을 훌쩍 넘긴 어린이미술대회를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1971년 첫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는 이제 중년의 나이를 넘겨 손자를 미술대회에 참여시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짧지 않은 역사와 대회의 전통을 잇기 위한 노력은 소중한 가치로 평가 받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 미술이 가지는 궁극적인 목적은 창의력을 길러주는데 있다고 본다. 특히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은 불가능하게만 느껴졌던 일들을 과학의 힘으로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발상의 전환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원초적 힘이 되는 셈이다. 창의적 사고를 키워주는 아동미술교육이 중요한 이
벚꽃이 절정의 왕국을 이룬 주말이었다. 자연의 절정은 그 대상이 무엇이 됐건 인간들에게는 큰 감동을 준다. 감동(感動)의 뜻은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다. 그런데 받을 줄만 아는 인간들의 움직임은 언제나 파괴로 향한다. 벚꽃이 핀 곳마다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고, 그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폐허에 가까운 황무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들과 다르게 복원력(復原力)이라는 놀랍도록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다음 일을 준비한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후회 없는 이별을 하는 벚꽃을 보면서 필자는 꽃들은 피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는 연습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피는 것이 화려한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 더 화려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탕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초기 불교 경전 `수타니파타`에서 제목을 따왔다. 수타(Sutta)는 말의 묶음(經), 니파타(Nipata)는 모음(集)이라는 뜻이다. 경전을 모은 것, 부처님 설법의 모음으로 이해하면 된다. `법구경`, `아함경`과 함께 `수타니파타`는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불교 경전이다. `수타니파타`는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각 장이 따로따로 전해지다가 어떤 시기에 하나의 `경집`으로 묶인 것이다. `수타니파타`는 모두 1천149수의 시를 70경에 정리하고 다시 다섯 장으로 나누어 놓았다. `뱀의 비유(蛇品)`, `작
봄을 지휘하는 농부들의 손이 현란해지고 있다. 음표를 그리기 전에 먼저 논밭에다 오선지를 만드는 그들의 모습에서 봄의 왈츠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그 가락에 맞춰 광대나물, 개불알꽃 등 봄 야생화들이 겨울 문을 힘껏 밀어 올리고 봄을 내보낸다. 자연의 리듬을 아는 농부들은 자신들이 만든 논밭 오선지에 씨앗 음표를 심는다. 그리고 철 따라 자연 광장 음악회를 개최한다. 철을 아는 자연의 광장과는 다르게 오로지 자기들만 맞고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인간의 광장들은 철을 모른다. 그래서 시끄럽다. 그것은 함성과는 구별되는 소음이다. 함성과 소음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함성이 큰 울림이 있다면, 소음은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광화문과 시청 광장의 큰 소리들은 측정이 불가능한 최악의 소음이
지난 3월 말 대구의 약전골목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마련됐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일어났던 3·1독립운동과 다양한 민족운동의 거점공간으로 잘 알려진 교남 YMCA회관이 오랜 공사를 통해 3·1운동 기념관과 YMCA 역사관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교남 YMCA회관은 1914년 미국 북장로교 대구선교지회가 청년전도를 위해 세운 건물로 대구 약전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1층과 2층 사이를 돌림띠(cornice)로 장식하고 창호 상부는 아치로 인방을 확보하여 사각형의 창문을 설치하는 등 1910~20년대 조적조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3·1독립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 공간이며 물산장려운동과 기독교 농촌운동, 신간회 운동 등
34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 자연인이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오랜 습관으로 출근시간이면 잠에서 깨지만 급할 일이 없으니 공연히 집안을 서성거린다. 그러다보니 집안 구석구석이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로 넘쳐나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도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참에 집안 정리를 좀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정리라는 것이 결국은 버리는 일이라는 걸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버리기`, 참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퇴직을 며칠 앞두고 작은 갈등을 느꼈다. 짐 정리를 언제 할 것인가? 너무 미리 하자니 주변에서 어찌 생각할까 마음이 쓰이기도 하였거니와 엄연히 퇴직일이 정해져 있는지라 마지막 날까지는 정상적으로 근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는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다. 정당도 많고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더 많다. 인지도 하나 믿고 대통령이 다 된 듯 다른 후보들은 물론 국민들을 가르치려드는 꼴불견 사람부터 지역 일은 다 제쳐두고 대선에 올인 한 사람들까지 대선 판은 한마디로 도떼기시장 같다. 그들과 시전 상인들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간절함이다. 대선 판에 뛰어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이 나라를 구할 최고의 적임자라고 말한다. 자기가 아니면 이 나라는 더 큰 혼돈에 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꼭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전국을 돌며 울부짖고 있다. 그 모습은 자신의 물건이 최고라고 외치는 시전 상인들과 닮았다. 대선 사
겨우내 기꺼이 산짐승들의 식량처가 되어준 산수유나무가 노란 봄을 가지마다 풍성하게 달았다. 그 밑으로 3월 찬 서리로 세안을 마친 제비꽃이 얼굴을 내밀었다. 철모르는 인간 사회에 침묵으로 시위하던 목련과 매화가 경쟁하듯 가슴을 열고 봄바람이 쉬어갈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조금 늦고 빠를 뿐 어수선한 세상과는 다르게 올해도 자연은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3월이다. 그럼 학교의 3월 모습은 어떨까.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고 쓰고 싶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개학하고부터 산자연중학교에는 전학을 상담하기 위한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턱대고 학생을 데리고 학교로 찾아온다. 아픈 말이지만 산자연중학교의 전화벨이 시끄럽다는 것은 그만큼 공교육이 잘 안 돌아간다는 것이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이가 말한다. “아빠는 참 부럽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나경아, 뭐가 부럽니?” 물음표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기다렸듯이 말하였다. “아빠는 할 일이 있잖아!” “그럼, 나경이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아이는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는 “아니야”라며 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일요일 아침 무기력해지려는 필자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초등학교 4학년 나경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해봤다. 과연 필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필자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또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는 왜 자신의 할 일을 말하지 못했는지? 질문들이
경북 봉화의 산골 작은 학교에 근무하며 틈틈이 아이들에게 시를 지도하던 송명원 선생이 2013년 봄, `내 입은 불량 입`(크레용하우스)이라는 어린이 시집을 묶어냈다. 경북 봉화에 남회룡분교(현재는 폐교), 북지분교, 수식분교 아이들이 쓴 시 60편이 실려 있는데, 박혜선 시인의 추천사처럼 “시가 친구고, 시가 가족이고, 시가 학교고, 시가 꿈이 되어 훨훨 날아오른다. 부서지는 햇살만큼 눈부신 언어들. 뭉클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눈을 뗄 수가 없는 근래 찾아보기 힘든 천진난만한 어린이 시집이다.” 책머리에 “멋지고 크고 훌륭한 열매보다는 울퉁불퉁하지만 작고 단단한 열매를 담았다”라고 썼는데, 이는 송명원 선생의 교육철학이자 삶과 문학을 바라보는 중요한 가치관이다. 교단이든 문단이든 얼굴도장
프랑스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오르세미술관에 가면 저녁 6시가 되면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입구를 길게 늘어선 행렬은 하나같이 행복한 모습으로 미술관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파리를 찾은 여행객들이 짧은 시간이지만 미술관 일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밀레의 `만종`이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이 오르세미술관의 대표작들은 모두 관람할 수는 없지만 문화대국 프랑스가 선사하는 관대한 배려에 새삼 행복감을 느낀다. 이는 문화와 예술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여유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일상 속에 정신적 풍요로움과 행복감이 만들어 내는 풍부한 엔돌핀 분출은 우리의 삶 속에 문화와 예술이 있어야 하는 분
십상시가 국정 농단을 일삼던 후한의 영제(집권 168~189년)시기 중앙정부는 지방할거를 막겠다고 지방장관인 자사의 명칭을 주목으로 바꾸고 이 주목이 군사감독관인 감군사자를 겸하도록 했다. 이 정책은 중앙집권이 약화되고 지방할거를 더욱 촉진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지방 호족들이 황제 권력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황궁의 십상시는 황제권력을 사수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권력 장악에만 전념하면서 국가나 황실의 운명을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은 없었다. 이들은 황제가 그저 유흥에만 빠져있기를 희망했다. 이들의 대표 격인 장양(135~189년)은 열두 살부터 환제를 주군으로 모셨다. 자신보다 세 살 많은 환제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황제의 측근으로 부상한 그와 환제의 관계는 단순히 신하와 주군을 떠나 동성애를 나누는 사이로 변하
“아빠,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 책가방이 빨리 학교 가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아빠, 진짜로 나 언제 학교 가?” 4년 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경이가 말버릇처럼 한 말이다. 학교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학 일주일 남겨놓고는 아예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안고 잠 잘 정도였다. 그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그런데 그토록 학교를 좋아하던 딸아이가 이젠 투덜이가 됐다. 월요일 아침 등교하면서 말한다. “아빠, 언제 토요일이 와?” 일요일 점심이 지나면 알람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아, 오늘이 토요일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아빠, 너무 힘들고 피곤해”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를 이토록 힘들게 만드는지, 그토록 학교를 가고 싶어 하던 아이가 이제 학교 말만 나오면 피로감
유건휴(1768~1834)의 `대야집` 암재어록은 스승인 유장원 선생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으면서 보고 들었던, 일상의 몸가짐에서부터 공부방법, 경서나 성리학의 이론, 시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가르침을 정리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들어있다. 별검인 족숙이 연경으로 가려 할 때 암재 선생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하였다.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명성을 좋아하는 자는 행실은 비루하되 스스로는 높은 체하고, 실질적인 데 힘쓰는 자는 행실은 고결한데 스스로는 낮은 체한다. 자신을 스스로 높다고 깃발을 흔드는 자는 실상이 부합하지 못하여 그 명성을 망치고, 낮게 자처하여 자신을 수양하는 자는 실상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어서 명성이 더욱더 드러난다`하였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혹시 족숙이란 분이 평소 자신을 실제보다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