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주 삼태봉:지구의 자전 속도 기령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6시를 훌쩍 넘고 있었다. 마우나오션 근처에 잘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경주에서 자고 아침엔 시내를 둘러보고 싶었다. 삼태봉을 지나 토함산까지 여섯 시간. 거기까지 갈 순 없을 것이다. 초행길인데다 랜턴도 없고, 핸드폰 배터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산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했다. “아아, 달빛에 반사되어 달이 되는 호기심 호기심이 소년들을 홀려 상봉에서 상상봉으로 밤새도록 끌고 다닙니다” ―신대철 `칠갑산1` 부분 달빛에 반사되어 달이 되고 싶었을까? 상봉에서 상상봉으로 그렇게 밤새도록 끌려 다니고 싶었던 걸까? 산을 향해 발길을 놓았다. 산자락에 걸렸던 해는 빠른 속도로 기운다.
일찍 일어난 탓일까? 안개가 흐리게 도시를 감싸고 있다. 문득 안개는 어쩌다 `안개`라 불리게 되었을까를 생각한다. 궁금함은 버짐처럼 번져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던 단어들을 낯설게 만든다. 눈, 하늘, 발, 길, 나무…. 희뿌연 안개 속에 웅크린 사물처럼 명료했던 단어들이 흐려진다. 발길은 어느새 서천교에 닿는다. 백운산과 묵장산에서 시작된 물은 경주 내남면에서 만나 형산강을 이룬다. 신라시대 수도를 가로지르던 가장 중요한 강 중 하나였던 형산강은 경주시와 포항시를 거쳐 영일만으로 유유히 흘러든다. 남상(濫觴). 배를 띄울 정도의 큰 강물도 그 근원은 술잔을 띄울 정도의 미약한 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말도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아`, `어`와 같은 말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참 이상한 산도 다 있지. 등산이라 하기에도, 그렇다고 산행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곳, 산보든 산책이든 그런 말로도 충분한 곳. 주왕산, 그 중에서도 `주왕계곡코스`를 걷는 일은 이런 일이지. 참 볼 것도 많지. 대전사를 지나 잘 다져진 흙길을 따라 걸으면 기암을 볼 수 있지. 병풍처럼 바위가 펼쳐졌다고 해서 병풍바위라고도 불리지. 주왕의 자식들이 달을 보았다는 망월대도 있고, 그 옆엔 그것만큼이나 높은 급수대도 있지. 물을 공급받는 곳이라니…. 신라 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이 왕으로 추대되었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왕위를 양보하고, 신하들을 피해 이곳에 궁궐을 짓고 살았다지. 산마루에 궁궐을 짓다보니 샘도 우물도 없어 계곡 물을 퍼 올렸다지. 그래서 그곳을 식수대라 부른다지. 학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처음으로 서울이란 곳엘 가게 되었다. 김천시외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을 연결하는 육교를 지나 역에 도착했을 때 눈은 삽시간에 쌓이고 있었다.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에 기차가 운행하지 않을까봐 마음을 졸였다. 사람이 많아 입석을 끊어야 했다. 객실과 객실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는 조잡해서 기차가 달리는 중에도 문을 열 수 있었고, 담배를 피울 수도 있었다. 객실과 객실의 `사이`이기도 한 이곳에 연결통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겠다. 하지만 그때는 이곳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이름이 없었다. 이 `사이`는 그저 `거기`나 `저기`로 불렸다. 이름 없는 것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그것들은 안전이라거나 청결이라고 불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치의 대상이었던 이곳은 낭만, 젊음, 운치라고 불리는 의미들이 쌓
SNS에 글을 올린다. 글을 올리기만 하면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좋아요`의 수만큼 기분이 좋고, 그만큼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더 많은 이해보다는 더 깊은 이해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글에 드러나지 않은 말, 일부러 쓰지 않은 말, 그래서 자신이 미처 모르고 있었던 의미까지 읽어주길 바라며 글을 올리는지도 모른다. 대개 바람은 바람으로 그치기 일쑤다. SNS 공간은 언제나 정보가 넘쳐나고, 정보는 끊임없이 업데이트된다. 글을 쓰고 몇 시간만 지나도 자신이 쓴 글 위에 새로운 글들이 쌓여 그 글은 묻혀버리고 만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쓴다. 칠포리 암각화를 보고 있다. 어쩌면 고대인들도 시간의 힘을 알고 있었을는지 모른다. 시간과 함께 켜켜이 쌓이는 정보 속에서 그들이 소중히 여기
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기만하면 영덕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해안도로는 정말이지 해안을 따라 뻗어 있어 오른쪽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아무리 빨리 밟아도 바다를 따돌릴 순 없다.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은 마틴은 골수암 말기의 루디를 꾀어내어 바다로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루디가 사고뭉치 마틴과 엮이게 된 건 마틴의 이 말 때문이다. “천국은 지리멸렬해서 오로지 바다이야기 밖에 할 게 없거든.” 천국에 갈 생각이라면 바다를 보는 것이 좋겠다. 아니 바다에 사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바다가 일상이 된다면?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는 “어부들은 더 이상 파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