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강일의 바람의 경치
바다는 파도쳐 푸르다

▲ 7번 국도 어디든 근사한 앵글이 된다. 청무우밭인 줄 알고 내려앉은 나비이야기가 풍문처럼 들려온다.
▲ 7번 국도 어디든 근사한 앵글이 된다. 청무우밭인 줄 알고 내려앉은 나비이야기가 풍문처럼 들려온다.

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기만하면 영덕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해안도로는 정말이지 해안을 따라 뻗어 있어 오른쪽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아무리 빨리 밟아도 바다를 따돌릴 순 없다.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은 마틴은 골수암 말기의 루디를 꾀어내어 바다로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루디가 사고뭉치 마틴과 엮이게 된 건 마틴의 이 말 때문이다. “천국은 지리멸렬해서 오로지 바다이야기 밖에 할 게 없거든.”

천국에 갈 생각이라면 바다를 보는 것이 좋겠다. 아니 바다에 사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바다가 일상이 된다면?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는 “어부들은 더 이상 파도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했다. 파도소리를 늘 듣는 어부에게 파도소리는 익숙한 어떤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숨을 쉬는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매일 물을 마시는 까닭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는 것처럼…. 어느 순간 바다가 무미해지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범사에 감사하라” 아무렇지도 않게 되뇌는 이 말을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바다가 있으므로 어부는 살아갈 수 있고, 직장이 있으므로 직장인은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에서 언제나 달아날 준비를 한다. 일상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가 곧 성자가 아닐까.

밀물처럼 밀려드는 생각을 추슬러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여전히 바다는 파도쳐 푸르고, 바다 위를 너울대는 바람은 바람소리로 흩어진다.

■ 영덕 대게는 대개 되게 맛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강구항에 닿게 된다. 이곳의 대게를 놓칠 순 없다. 대게는 되게 맛있다. `대게`는 큰 게라는 뜻이고, `되게`는 `매우, 몹시`라는 뜻이다. 가격에 대해서 말하자면, 흥정만 잘한다면 얼마든지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이곳에 대게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개 연인들이다. 여기서 `대개`는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연인들은 서로에게 조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왠지 모든 사람들에게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남자든 여자든 어딘지 모르게 다소곳하게 느껴진다. 수줍은 그들이 먹는 대게의 양은 턱 없이 적어 내가 먹는 양의 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게의 가격은 대개 엇비슷하다. 여기서 `대개`는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시내를 훑는다. 상가의 간판들은 대개 대게와 관련된 것이다. 오죽하면 운동장 이름도 대게운동장이고 노인정도 대게노인정이다. 영덕에는 대게도 많지만 대게라는 이름도 되게 많다.

■ 개와 늑대의 시간

집으로 돌아올 무렵, 해가 산을 넘는다. 산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은 장관이다. 해가 훌쩍 산을 넘어가면 `사이`의 시간이 찾아온다. 낮도 밤도 아닌 시간. 프랑스에선 이렇게 푸른빛이 감도는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이 말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께다. 불문학자이며, 까뮈의 전집 번역으로 널리 알려진 김화영 선생은 오정희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평론의 제목을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문학동네, 1996 여름)이라 이름 붙였다. 김화영은 이 시간을 “무엇인가 지워지고 사라지는 시간”, “존재와 부재 사이에 걸려 있는 진행성 소멸의 시간”이라 정의했다.

어렵게 느껴지는 이 말은 십여 년이 흘러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 계기는 동명의 드라마였다. 소위 `개늑사`라 불렸던 이 드라마의 명대사는 김화영의 말을 쉽고 감각적으로 풀어쓰고 있다.

“해질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이때는 선과 악도 모두 붉을 뿐이다.”

사실 이 시간은 붉지 않고 푸르다. 밝음과 어둠이 불명확한 시간, 그리하여 모든 구분이 불가능해 지는, 이 청색의 시간.(언젠가 우리는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이런 시간과 연관 지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간은 무척 짧아 채 십 분을 넘지 않는다.

 

▲ 공강일 자유기고가
▲ 공강일 자유기고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 밤이 쏟아진다. 쏟아지는 어둠과 함께 달빛이 내린다. 이번엔 달이 내내 차를 따른다. 달빛을 잡으려 카메라를 치켜든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선이 달만 잡을 수 있도록 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전선도 달빛도 사람 사는 곳을 향해 뻗어간다. 달빛에 젖은 세상은 저렇게 멀리에서 잠이 든다.

되도록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집으로 깃든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하루를 산다.

※ 이번 주부터 매주 금요일 `공강일의 바람의 경치`를 연재합니다. 공강일씨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서울대·국민대 강사를 지냈으며,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