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이나 됐을까? 조그만 꼬마가 말을 다루는 솜씨가 놀라웠다. 초원 위에서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서커스`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동행한 몽골의 안내원이 “이곳에선 저 정도는 놀라운 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애들이 말을 아주 잘 타요”라며 껄껄 웃었다. 몽골의 하늘은 광활한 초원의 색깔을 닮았고, 몽골의 초원은 드넓은 하늘과 유사한 빛깔이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초원인지 그 경계가 흐려진다. 먼지 한 점 보이지 않는 청아한 날. 몽골의 풍경은 원시적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자신을 지켜보는 여행자들의 박수와 환호에 신이 났는지 말 위의 소년은 갈수록 고난도의 기술을 보여준다. 맞다. 저 아이는 몽골인이다. 혈관 속으로 칭기즈칸과 쿠빌라이칸의 피가 흐르는.
홋카이도 여행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순백의 눈에 뒤덮인 아름다운 자연과의 만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넓은 호수 너머로 펼쳐진 설산(雪山)과 어두운 하늘에서 보석처럼 뿌려지는 눈발. 쌓인 눈 위를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젊은 연인들…. 새하얀 눈이 주는 정감은 홋카이도의 시골마을과 현대화된 도시 삿포로가 다르지 않았다. 홋카이도를 여행했을 때 동행한 엄마가 잠들면 홀로 나와 눈 쌓인 거리를 걷는 일이 잦았다. 늦은 밤. 이국의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누구라도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지나온 시간 또한 동시에 아련해진다. 그 색채와 질감으로 인해 `눈`은 첫사랑의 은유나 상징으로 곧잘 사용됐다. 특히 시와 소설 등의 문학에서 그랬다. 기자를 포함한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던
뿔 달린 고양이만큼이나 보기 힘든 게 `엄마에게 다정다감한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찍부터 시작한 객지살이. 엄마는 1년 중 하루도 아들을 떠올리지 않는 날이 없었겠지만, 아들은 1년 내내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보여주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게 `식구에 대한 애정`이라고 믿었다. 기자는 살가운 아들 혹은, 좋아하고 아끼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남자와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다. 그래서다. 48년 가까이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애정 표현을 한 기억이 없다. 서글프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10년 전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엄마는 부쩍 외로워했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방식으
일흔 살 엄마의 행적이 3시간 넘게 묘연했다.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노인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찾아나서야 하나,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전의 상황은 이랬다. “휴가를 내고 함께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결정을 전하자 엄마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어디서 들은 것인지 “거기는 온천이 유명하다던데 가면 실컷 해야지”라며 손뼉까지 쳤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했기에 새벽에 일어났다. 빠진 짐이 없는지 살펴보고, 며칠 비울 집의 문단속을 하면서도 노인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김해공항을 출발한 항공기가 3시간 남짓을 날아 홋카이도 치토세공항에 도착한 것은 점심을 먹기 전이었다. 일본 땅에 발을 딛자
열대의 거리를 한가롭게 오가는 사람들,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며 재잘대는 새들, 한적하고 평화로운 바닷가 풍광만을 보자면 오키나와는 한없이 아름다운 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기에도 비극의 역사는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가던 1945년 봄.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에선 2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 그중 15만 명은 이른바 `천황의 군대(皇軍)`도 아니었고 `대동아공영`과 `빛나는 일본제국 건설`에 관해 아는 바 없던 섬의 무지렁이들이었다. 미국 전투기의 폭격이 이어지던 그 당시.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상륙한 미군에 잡히면 남자들은 손발이 잘리고 여자들은 윤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끔찍한 이야기. 패전을 예감하고 있던 일본군은 주민들에게 자폭용 수류탄을 나눠줬다고 한
오키나와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전엔 `류큐`라는 이름의 독립적인 왕국으로 존재했던 섬이다. 또한, 세계 제2차대전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이곳에 주둔한 미국 군대의 영향 탓인지 `생선요리의 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이면서도 회보다 스테이크가 더 맛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들려오는 섬. 한국 사람들이 제주도를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듯 오키나와는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내 여행지`다. 그렇기에 외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하는 국제선공항보다 일본 각 지역을 오가는 비행기의 이·착륙지인 국내선공항이 더 크다. 이채롭고 재밌는 풍경이었다. 최초의 한글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이 바로 오키나와라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 사이를
연일 이어지는 추위에 사람들의 어깨가 한없이 움츠러든다. 폭설로 활주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제주공항은 비행기 운항이 일시 중단됐고, 그 외에도 많은 도시들이 혹한에 몸살을 앓고 있다. 비교적 따스한 지역이기에 눈을 보기 힘들었던 한반도 남부에도 보기 드물게 많은 양의 눈이 쏟아졌다. 이로 인한 교통체증 등이 불편을 부르는 상황. 사람이란 게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동물이라 추운 날이 이어지는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고, 폭염이 짜증을 부르는 여름에는 시원함을 애타게 그리워한다. `사람살이`라는 게 어찌 보면 유치하고 우습다. 2018년 벽두부터 시작된 한파가 연일 기승을 부리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요즘. 불어오는 동해의 바닷바람에 코트 깃을 세우는 추위는
많은 한국인들이 이슬람교와 무슬림(Muslim·이슬람교도)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자 역시 그랬다. 터키를 여행하기 전에는. 우리가 거의 매일 접하는 TV 뉴스나 영화에선 “유일신 알라(Allah)를 신봉하라”고 외치며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향해 폭탄을 던지거나, 코란(Koran·이슬람교의 경전)을 교조적으로 해석해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며 여성의 인권을 억누르는 무슬림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과연 모든 이슬람교 신자들이 그처럼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일까? 이 물음에 관해선 단호히 답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지구 위에 사는 무슬림은 13억 명이 넘는다. 그들 중 탈레반(Taliban)이나 IS에서 활동하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무슬
또 1년이 갔다. 한 해의 마지막 무렵이 되면 생각이 많아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현재가 행복하지 않은 이들은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에 매달린다. 초등학생이 연주하는 단조로운 피아노곡 같은 지루한 날들을 살고 있는 기자 또한 `좋았던 과거`를 자주 떠올리는 요즘이다. 몇 해 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나라 터키에서 한 달쯤을 보냈다. 그중 보름 이상을 이스탄불에 머물렀다. 추억은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어젯밤. 터키 여행 때 쓴 일기를 뒤적이다가 혼자 웃음 지었다. “저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구나”라는 혼잣말을 하며. 2017년의 막바지. `현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 해묵은 일기의 몇 부분을 공개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201
`일상에서의 탈출`이라 부를 수 있는 여행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음식이다. 낯선 공간에서의 피로와 어색함을 털어내는데 맛있는 요리와 흥겨운 식사자리만한 게 있을까? 터키는 프랑스, 중국, 태국 등과 함께 독특하고 매력적인 요리가 많은 나라로 손꼽힌다. 오스만 제국은 한때 유럽, 발칸반도, 북아프리카, 페르시아 등의 지역을 지배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그곳의 문화를 흡수했고, 이는 터키의 음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터키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래 소개하는 요리를 꼭 맛보길 권한다. 대부분의 음식은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고, 더불어 가격 역시 형편이 넉넉지 않은 배낭여행자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
`직접 경험`은 인간의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여행은 직접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현자(賢者)`라고 부르는 이들은 “인생의 자산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여행”이라고 말한다. 경험하지 못하고 짐작만으로 인간과 세상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판단은 선입견과 편견에 근거해있기 십상이다. “이슬람국가의 사람들은 모두 코란(Koran)만을 광신하는 종교적 독단에 빠져있다”는 것도 편견 중 하나다. 기자는 이슬람국가인 이란을 17일, 터키를 한 달쯤 여행했다. 당연지사 적지 않은 이란인과 터키인을 만났다. 99.9%가 이슬람교 신자였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종교적 독단이나 타 종교에 대한 혐오를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친절하고 상냥했다
터키의 이스탄불은 묘한 도시다. 15분만 배를 타면 유럽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게 가능하고, 낚시꾼들로 가득한 갈라타 다리 밑 카페에 앉아 터키 전통주 라키(Rakı)를 마시고 있자면 좌와 우로 유럽과 아시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몇 해 전 봄. 이 `묘한 매력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보름쯤을 머물렀다. 어느 날은 무료함을 견디기가 힘들어 어디를 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숙소를 나와 배를 타고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외관이 썩 근사한 하이다르파샤역(驛)에 도착했다. 그 역은 동서(東西)로 수십 시간을 달리는 국제열차의 출발지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까지 가는 기차도 일주일에 한 번 다니는데 소요 시간은 자그마치 70시간. 연착이라도 할라치면 나흘을
여름도 끝자락에 이르렀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폭염과 폭우가 지루하게 반복되는 도시에서 삶을 영위하는 우리는 먼 바다로 떠나는 꿈을 꾸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통유리와 자동차의 소음. 이는 도시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그것들을 몰아내면 어떤 공간이 그려질 수 있을까? 아마도 푸른 파도의 나지막한 노래가 몸과 마음의 피로를 녹여주는 바다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기자는 그간 `아름다운 해변`이라 불리는 국내외 여행지를 여러 곳 돌아봤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진다. “네가 가본 바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야?”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잠시 후에 내놓기로 하고 먼저 기자의 기억 속에 `잊을 수 없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몇 개의 해변을 말해볼까 한다.
많은 돈을 쓰고 다닌다면 여행은 편해진다. 넓고 안락한 호텔에서 자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신선한 재료로 만든 희귀한 요리를 먹고, 버스나 기차가 아닌 기사가 운전하는 리무진에 올라 경치 좋은 곳을 돌아보는 여행이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호사스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가능한 돈을 아껴가며 새로운 문물과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한다. 기자 역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면서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절약하는 여행자`에 가깝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 갔을 때도 “하루에 1만 원 정도로 이 도시를 즐겨보자`는 마음을 가졌다. 그때 겪은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가난한 연인들 5시간쯤의 비행 끝에 방콕에 도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거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다양한 인종들이 뿜어내는 색색깔의 에너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미지의 땅을 탐험하려는 수백 명의 청년들…. 장기간의 배낭여행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Khaosan Road)는 `꿈의 공간`처럼 인식돼온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곳의 독특한 문화를 소개한 책도 여럿이다. 실제로 카오산 로드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와 음식점이 넘쳐난다. 그곳에서 1~2개월을 머물며 태국을 포함해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의 동남아 국가를 여행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태국 왕궁에서 1㎞ 정도 거리에 위치한 방람푸 시장. 카오산 로드는 그 일대에 형성된 `여행자들의 거리`를 지
20대 초반부터였다.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싶었던 건. 3만5천 점의 고대와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는 `루브르 박물관`이나 고흐와 모네 등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명작이 줄줄이 내걸린 `오르세 미술관`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파리를 상징하는 불 밝힌 에펠탑 아래서 인증사진을 찍거나, 몽마르트르 언덕 `화가의 거리`에서 싸구려 초상화의 모델이 되고 싶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기자에게 파리는 `페르 라셰즈` 혹은 `짐 모리슨`(Jim Morrison·1943~1971)과 등호였다. 1960년대 활동한 록밴드 도어스(The Doors)의 보컬리스트였던 짐 모리슨은 절망과 희망, 빛과 그림자, 고통과 환희, 삶과 죽음…. 이 모든 심각한 단어의 절정을
누구나 마찬가지다.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은 어색하다. 평소 살아온 공간으로부터 수천 km가 떨어진 곳. 전날의 과음으로 인해 편치 않은 위장을 달래줄 방식이 한국과는 판이한 프랑스. 콩나물국이나 뜨끈한 새우죽을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해장 방법을 찾아야했다.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뜨지 않은 새벽 6시. 허한 속을 달래줄 뭔가를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다행이었다. 가까운 곳에 빵집이 있었다. 바게트, 크루아상, 베이글, 샌드위치…. 이른 시간임에도 파리의 제과점은 갓 구운 빵들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로 가득했다. 검은 머리칼이 한 올도 보이지 않는 은발의 할머니가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와 따스한 웃음이 세련돼 보였다. 그런데, 빵을 고르고 값을 치르는 방식이
비행기에 오른 지 10시간이 넘어섰다. 견딜 수 없이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멀고도 멀었다. 이전까지 경험한 최장시간 비행은 태국 방콕에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까지 날아갔던 8시간 남짓. 인천공항에서 파리까지는 그보다 4시간쯤이 더 걸린다고 했다. 집을 떠나 길 위에 나선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기내식과 무제한 제공되는 샴페인과 맥주도 서너 시간 정도의 지루함을 달래줄 뿐이었다. 황지우의 시집과 프랑스여행 가이드북을 건성으로 뒤적이기도 하고, 비행기 좌석에 설치된 모니터로 영화를 보고,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클래식음악에도 귀를 기울여봤지만…. 시간은 대체 왜 이렇게 더디 가는 것인지. “인간이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간은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속도로 흐른다”
현대인이 일상에서 모험을 즐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여행에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소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기자는 여행지에서의 `스릴`을 즐기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일까? 안전성 면에서 훨씬 높은 점수를 받는 큰 비행기보다 작은 비행기를 더 좋아한다. 소규모 난기류에도 심하게 흔들리고, 대형기에 비해 추락의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되는 소형기들 말이다. 여러 차례의 제주도 여행에서도 60인승 정도의 작은 비행기를 탔던 게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필리핀 여행에서도 소형기를 자주 탔다. 필리핀은 대략 7천50개 정도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고, 각각의 섬들을 이어주는 유용한 교통수단이 작은 비행기와 페리(ferry·여객운송선)다. 필리핀에는 에어필리핀, 필리핀항공, 세부퍼시픽,
2008년 봄. 엄마는 남편을 잃었다. 38년을 함께 살아온 사내의 간에서 시작된 암이 대장으로 번졌고 수술 등의 치료가 이미 늦은 상황. 담담하게 100여 일을 앓다가 비탄의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용히 한 줌 재로 사라진 남편. 살아오는 내내 말수가 적었던 남편은 이렇다 할 유언 따위도 남기지 않았다. “집이 춥다. 따뜻한 곳으로 옮겨 살아라”란 말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게 더 슬퍼서였을까? 엄마는 소리 없이 오래 울었다. 기자 역시 아버지를 안타깝게 떠나보냈지만, 더 큰 아픔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야 할 엄마를 곁에 두고 크게 울 수 없었다. 그저 이런 약속을 했을 뿐이다. “아버지 대신 내가 해외여행도 함께 가고 할 테니 너무 슬퍼마세요.” 크건 작건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