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귀자수필가
피귀자
수필가

나긋하게 얹힌 봄이 꽃샘추위 속에서 시간의 길을 잃어버린 날, 무엇에 이끌렸을까. 지하철에 들어선 풍뎅이 한 마리가 수십 개의 눈 안에 갇히고 말았다. 이리저리 부딪다가 뒤집어져 팽그르르, 축을 잃은 팽이의 동작에 놀란 몇몇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 모양이 마치 찬바람 속에서 버둥거리는 새싹을 닮았다.

진화를 꿈꾸던 곳은 어디였을까 여긴 분명 아닐 텐데. 낯선 환경을 뒤늦게 감지한 걸까. 날갯짓의 속도에 점점 불안함의 무게가 더해진다. 먼 섬을 찾아 들썩여도 좋았을 저 튼튼한 견골. 잘못 접어든 골목길에서 한참을 헤매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던 난감함이 저럴까. 미로를 빠져 나가려고 허우적거리다보면 당황하기 일쑤 아니던가. 조급한 마음에 애를 쓰면 쓸수록 침착함과는 멀어지고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던가.

호기심 가득한 구둣발과 운동화 사이로 앞발 뒷발 바싹 들고 하늘을 이고 살던 등으로 돌리는 풍뎅이의 연자방아. 낯선 말의 길에서 한동안 잃었던 나를 여기서 다시 보듯 풍뎅이의 비보이 공연이 아찔했다. 그때 새로 들어찬 사람들에 가려 대각선 입구 쪽에 있던 풍뎅이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안개처럼 일어났던 관심도 차츰 바람처럼 사라져갔다.

또각또각 뾰족 하이힐이 걸어와 맞은편 빈자리에 앉자 의자까지 환하다. 매끈한 종아리 위의 짧은치마 끝을 향해 저절로 고개가 들려지고 아뿔싸 훔쳐보던 눈동자들, 들키고 말았다. 여자의 눈도 저절로 드러난 다리를 더듬는데 남자들이야 오죽할까. 옆자리 검은 운동화의 하얀 끈과 날씬한 종아리도 눈부시다. 파릇한 청춘의 다리는 곧다. 맞은 편 사람의 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핸드폰의 자판을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다.

창 모자 밑으로 보이는 세상은 색다르다. 모자를 쓰고 지하철에 앉아 고갤 살짝 숙이면 사람들의 무릎아래만 보인다. 마주보는 것이 어색했는데 창 모자 하나가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까만 납작 망사구두가 부푼 발을 감싸느라 터질 듯 하고 연세 많은 할머니의 통통한 다리는 아직 세상을 딛고 설 기운이 넘침을 말해 준다. 끌어올린 두꺼운 양말 속 종아리가 나이를 과시하고 있지만. 발만 바라봐도 나이가 보이고 비슷하거나 아예 같은 신발의 남녀는 다정한 커플임을 과시한다. 아마 고개를 조금 더 들면 겉옷이나 윗도리 등도 커플룩이 보일지도 모른다.

어느 역에서인가 맞은편 의자의 손님들이 교체되었다. 여섯 자리 모두. 평소엔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중요치 않던 자리 수를 세다보니 지하철은 종점을 향해 달린다.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는 시외로. 팔이 불편해 보이는 할아버지는 운동화 한 쪽 앞이 비어있는 듯 앞쪽이 쭈글쭈글 하다. 발 뿐 아니라 한쪽 손까지 불편한지 손바닥이 위쪽을 향해 의자에 힘없이 놓여 있고, 또 다른 발이 되었을 지팡이 끝 고무판도 비뚤게 닳아 있었다.

레이스가 있는 하얀 바짓단 아래 분홍 색깔의 구두는 더 선명하다. 그 옆자리 까무잡잡한 슬리퍼의 아주머니와 대조적이다. 두 사람의 나이는 비슷할 것도 같으나 신발로만 본 나이는 차이가 확연하다. 다리 사이에 삼진 어묵 종이봉투를 끼우고 앉은 아주머니는 구겨진 봉투처럼 안절부절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시 문이 열리자마자 검은색 바탕에 연두색 끈이 달린 볼 넓은 운동화에 온통 흙이 묻은 아저씨가 올라왔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텃밭이라도 가꾸느라 묻힌 흙일까?

아뿔싸! 굼뜨게 지하철을 내리려던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와 그 흙발아저씨가 부딪히고 말았다. 기우뚱하던 할아버지는 기어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손과 발이 불편해 보이더니 풍뎅이를 밟고 미끄러지면서 주저앉듯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다. 그때까지 파르르 떨다가 점점 움직임이 느려지던 풍뎅이처럼.

목소리가 없어 말을 못하는 풍뎅이. 온몸으로 안간힘을 쓰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던 당신의 슬픈 등은, 마스크와 모자로 변장하고 자신의 일 외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암시를 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상대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최고의 배려라는, 이청득심(以廳得心)을 실천하지 못하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