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충택 논설위원
심충택 논설위원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갈수록 악화돼 환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26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잠정 보류하면서 의료계에 대화의 손을 내밀었지만, 의대교수들은 ‘2천명 증원’ 철회 없이는 대화를 할 수 없다며 사직서 제출을 강행하고 있다. 정부가 공보의 등을 투입해 의료 공백에 대처하고 있지만, 전공의에 이은 교수 사직으로 의료시스템은 붕괴 직전이다.

지난 일요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과 만나고, 윤석열 대통령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 방침과 관련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을 때만 해도, 의정갈등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하루 만에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차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협상테이블 마련이 어려워지게 됐다. 의대교수협의회는 25일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및 배정’ 철회 없이는 현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했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7년 만에 이뤄진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못박았다. 정부가 ‘의대 증원만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한 것이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간의 갈등은 지난주 정부가 향후 두 달 동안 ‘의약품·의료기기 불법 리베이트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더 악화됐다. 정부가 갑자기 의사들의 불법 리베이트 수수 사례를 꺼내들면서, 신고하면 최대 3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가 겉으로는 의료계를 향해 “모든 이슈에 대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겁박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이 전공의들의 파업과 관련해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앞으로 의료 공백이 더 심화되면 ‘정부 책임론’이 불붙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 내부에서도 의료공백 사태를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들어 정부의 강경한 의대증원 정책에 대해 민심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금 의정갈등은 중요한 고비에 있다. 정부가 일단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보류했지만 무기한 연기한 것은 아니다. 현재 전공의 90% 이상인 1만여 명이 면허정지 대상이다. 의대교수들도 사직서 제출과 함께 사실상의 준법투쟁에 들어가 외래진료와 수술·입원 병상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의료계는 끝까지 협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양측이 서로 2천명이라는 숫자에 얽매여 의료공백을 장기화하는 것에 대해 환자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이기고야 말겠다’는 양측의 치킨게임식 감정싸움은 부정적인 결말을 낳게 마련이다. 당장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울지라도 서로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을 끈질기게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일단은 양측이 한 테이블에 앉아 협의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대화를 하다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