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색채로 다가오던 봄날이 비의 리듬까지 더해져 생동감을 부추기고 있다. 남도의 매화꽃을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꽃의 샛노란 반김이 이어지고 군데군데 희끗희끗 조금씩 피어나는 목련과 벚꽃의 망울을 일제히 일깨우듯 봄비가 내리니, 멀지 않아 촉촉해진 대지에서는 한바탕 자연만물의 춤판이나 소리판이 어지간하게 열릴 것만 같은 모양새다. 흐르는 꽃향기 따라 벌, 나비가 날아들고 수시로 지즐대는 새소리에 산골의 여울물 소리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그야말로 뭔가 심상찮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오는 봄날은 왈츠풍의 리듬으로 만물을 깨우면서 서서히 생동의 향연을 펼치게 될 것이다. 생동하는 리듬감은 음악의 악보처럼 매끄럽고 활기차며 탄력과 윤기가 흐르는 듯하다. 흐르는 물은 개울의 얕고 깊음이나 좁고 넓음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다가 마치 연주하거나 노래하듯이 엷거나 또렷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게 된다. 그러한 흐름과 작용을 자연에서 터득하거나 모방하고 변용하여 새로운 선율과 리듬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일종의 예술이나 창작의 행위도 그러한 관점의 배경이나 응축의 과정을 거쳐서 창출되는 것이 아닐까?

‘먹과 벼루의 부대낌/음률처럼 들리더니//이윽고 신명나게 붓의 춤판 거침없다/크고 작다가 강하면서 약하고 느린 듯 빠르고 성글다가 빽빽하게/길거나 짧고 가벼운 듯 무겁고 얇다가 깊고 살찌거나 앙상하게/…./휘어질 듯 곧추서고 날아갈 듯 멈칫하며 끊어질 듯 이어져/석간수로 노래하다 폭포수로 쏟아지고 장류수(長流水)로 흐르는데….//먹빛이 가락을 타고/지축을 뒤흔드네’ - 拙사설시조 ‘붓의 춤’ 전문

봄은 어쩌면 춤을 닮았기에 용수철처럼 톡톡 튀어 오르는 탄성이 있어서 스프링(Spring)이라 하는지도 모른다. 새싹들이 메마른 대지 여기저기서 음표마냥 쏙쏙 솟아오르고, 새 움이며 봄꽃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며 봄의 생동을 축복하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생기발랄하게 움직이는 봄의 춤사위 같기도 하고, 기운생동하는 서예작품의 거침없는 필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리저리 활개치며 신명나게 춤판을 벌이는 몸동작 마냥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추는(筆歌墨舞) 듯한 현란하고 활달한 붓질로 일필휘지 자연의 명작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듯이 자연과 교감하는 예술은 상호작용으로 일맥상통하기에 공감과 울림의 폭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적인 교집합을 인식, 조명하여 상생의 아이템으로 확장, 융합시켜 나간다면 예술의 시너지 효과는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예컨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서예가가 빗자루붓을 들고 특유의 춤동작을 곁들이며 진중한 휘호 퍼포먼스를 펼친다거나, 춤꾼이 몸짓 언어로 외치는 이색적인 춤사위에 어울리는 시낭송이나 기타의 요소를 가미하게 되면 스토리와 운치가 한결 품격 있고 유장해지지 않을까 싶다.

희망의 색과 환희의 빛으로 세상이 생동하는 때, 저마다의 습성과 기대로 새봄을 맞이하자. 움직이고 활동하며 봄을 즐기는 만큼 선물 같은 하루가 열리고, 애써 노력하고 추구하는 것만큼 의미 있고 생동감 있는 리듬의 삶에 가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