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탐방
(20) 문경 화산리 천연기념물 육솔(六松) 노거수

문경 청화산 자락에 서있는 제292호 천연기념물 반송 노거수.

“노거수 아래 낮잠을 자는 나를 보았다. 단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얼떨떨한 정신에 눈을 떴다. 백두산 호랑이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호랑이로부터 도망도 못 치고 큰일이 났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두려움보다는 친근감이 갔다. 호랑이는 긴 꼬리를 흔들며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을 했다. 호랑이 등은 참으로 포근했다. 호랑이는 천천히 산의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산천을 주유하며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하였다.”

동물의 왕국에서나 볼 법한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다니, 호젓한 산중 고찰 뒤편 산신각 벽화에 그린 할아버지와 호랑이가 생각났다. 참으로 실제와 같은 묘한 단꿈을 생각하면서 문경 청화산 자락에 있는 농암면 화산리 942번지 제292호 천연기념물 반송 노거수를 찾았다.

계곡 깊숙한 곳에 숨어있기라도 하듯이 반송은 늠름한 자태로 청화산 등산로 초입에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깊은 산속의 적막을 깨뜨리는 것은 청화산 자신이었다.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것이 싫어서 조용하고 한적한 산을 찾아 힐링하고자 하는데, 때 아닌 겨울 산, 자신 몸에서 흘러내리는 청아한 개울 물소리와 나뭇가지에서 내는 솔바람 소리는 무한한 침묵에 대항하는 듯했다.

그러나 산중의 물소리와 바람 소리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악기보다 아름답게 들려 그 무엇보다 힐링이 되었다. 솔향 품은 거대한 노거수를 카메라 렌즈에 담을 때 갑자기 개울에서 후닥닥하는 소리와 함께 고라리 한 마리 놀란 듯 쏜살같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단꿈 생각과 함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화산리 천연기념물 반송 노거수
산중 계곡물 합류지점에 터잡아
푸른솔가지 곡선 아름다운 형상
물과 바람에 실려 자연의美 뽐내

푸른 솔가지에 매달아 놓은 오방색 띠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라도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반송의 손에 쥐어진 장난감으로 생각되었다. 높은 산봉우리 시루봉 큰 바위 2개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나무의 안위가 염려되어 높은 곳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것일까. 계곡물 합류 지점에 사는 반송은 넘쳐나는 계곡물에 언제 떠내려갈지 목숨이 위태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 홍수 때에는 목숨이 간당간당 했을지도 모른다. 형제처럼 주변에 세 그루의 동생 소나무 노거수를 데리고 있었다. 그들 나이도 300년은 훌쩍 넘었다. 계곡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 뿌리 손은 계곡 언덕의 바위를 꽉 부여잡고 있었다. 푸른 이끼는 얼싸 좋다 하고 반송의 몸에 착 달라붙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묘한 공생의 동거를 하고 있었다.

산중에 살아가는 반송 노거수는 자연이 창조한 예술 작품이다. 노거수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높이 솟은 노거수 나뭇가지 곡선의 자유로움에서 무한한 곡선미를 느낀다. 둘째, 겨울임에도 전시장 벽에 걸린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푸름의 미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소나무만이 가능한 일이다. 셋째, 몸의 수피에서 느끼는 연륜의 미는 존경하는 스승과 진배없다. 넷째, 우산처럼 치렁치렁 늘어뜨린 솔가지의 균형과 조화미는 안정감을 주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다섯째, 거대한 몸을 지탱하기 위하여 땅을 파고든 뿌리의 강인함에서 보는 끈기의 미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여섯째, 하늘을 향한 붉은 줄기와 단아한 수형에서 나오는 절제의 미를 느낀다. 산중 자연에서 살아가는 반송의 노거수를 여섯 가지의 미를 상징하여 육솔(六松)이라 부르면 어떨까. 옛 이름도 되찾고…,

문화와 예술은 무어라 하여도 자연의 미를 최상으로 여긴다. 인공으로 창조한 미는 어딘가 모르게 좀 부족한 부분을 느낄 수 있지만, 자연의 미는 어디 하나 흠잡을 때 없다. 문화와 예술은 삶을 윤택하게 하고 마음을 순화시키고 맑게 해 준다.

누군가 말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적은 인간이다. 오직 인간만이 인간을 제어할 수 있다. 이제 이 지구상에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위협할 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위험한 인간을 인간답게 승화시키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다.” 그렇다, 문화와 예술은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이런 면에서 산림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산림 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을 살찌게 한다. 특히 노거수는 문학 작품의 대상 이전에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 같은 존재이다.

화산리 천연기념물 육솔의 노거수도 해코지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설화도 하나의 문화이며 문학이다. 실제 경험을 과장하였든지 아니면 상상으로 지어낸 허구는 세상에서 매우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학은 인간을 감화시킬 수 있다. 말하자면 사회생활의 정신이자 기술로,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볼 때 허구 없이는 어떤 예술이나 재능도 완성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거나 감동시키고 싶다면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진심이 담긴 믿음을 주어야 한다. 자연 그 자체는 인간이 삶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인내하도록 만든다. 노거수 설화 속에 담긴 금기 사항이나 지향하는 마음은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길이다. 나무를 보호하는 것으로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다. 영적 요소의 존재는 미의 완성에 불가결하다.

나무 보호는 자연 사랑으로 이어져 공생의 길을 터놓았다. 그리고 세월이 만들어 놓은 소나무의 다양한 미는 우리가 지향하는 미의 결정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자연스러운 행위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또한 노거수를 보고 있으면 황홀감에 빠진다.

인간이 창조한 작품은 아무리 오랫동안 작업을 해도 작가의 한 생애에 끝이 난다. 그러나 나무의 아름다운 미는 수백 년 동안 이루어 놓은 자연의 작품이니 비교할 수 없다. 자연의 물상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요, 충만이다. 아름다움은 조화와 균형 속에 있다. 사계절이 한 해를 가득 채운다. 인간의 마음에도 사계절이 있다. 육솔의 노거수를 보면서 봄의 문턱에서 깨끗한 겨울의 상념들을 달콤하게 새김질해 본다.

 

노거수와 함께 전하는 설화

육솔 노거수는 징벌담의 설화를 가지고 있는 노거수로 키 24m, 가슴 높이 둘레 5.1m, 나이 400살 훌쩍 넘어섰다. 나뭇가지가 여섯 개라서 육송이라고도 불렀다.

노거수에 대한 고사와 설화는 여러 유형으로 구분해 이해할 수 있다. 식목담(植木談)은 마을을 개척한 사람이나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이 심었다는 노거수에 대한 고사이다.

이인계시담(異人啓示談)은 꿈속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 계시하는 대로 이행하면 반드시 유리한 상황이 전개된다는 노거수 설화이다.

현몽담(現夢談)은 당산나무에 꿈 이야기가 부가되어 있는 것으로 꿈속에 목신이 나타나 인간에게 계시하는 것으로 사람과 대결한다거나 괴질을 물리친다는 노거수 설화이다.

풍수담(風樹談)은 풍수지리설이 포함된 노거수 설화이다.

환생담(還生談)은 사람이나 동물이 죽은 후 나무로 환생하여 신앙의 대상이 되거나 신성시되는 설화로서 징벌담과 마찬가지로 노거수의 설화로서 빈도가 높다. 하나의 노거수에 고사와 설화를 복합적으로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