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나이트 선교사들의 유산 중 현존하고 있는 교사동.
나노나이트 선교사들의 유산 중 현존하고 있는 교사동. 

근대문화 유산이 새롭게 조명되며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며 경산지역의 근대문화도 보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경산지역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역 기독교계의 대표들로 구성된 (사)경산메노나이트 근대문화 유산보존회(이하 유산보존회)는 신천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메노나이트 선교사들이 남긴 지역의 근대문화 유산을 보존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등 지역을 알리는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메노나이트 선교사들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MCC)의 파송으로 생계가 막막한 전쟁미망인과 전쟁고아들을 돕고자 한국에 들어왔다가 1968년에 발발한 베트남 전쟁으로 발생한 미망인과 고아들을 돕고자 1971년 한국을 떠나기까지 20년 동안 구제 활동과 전쟁고아들을 교육하고 전쟁미망인들에게 재봉과 편물 기술을 익혀 자립의 길을 열어주었다.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는 재세례파 신앙을 가진 메노나이트 교단과 아미쉬 교회들, 형제 교단의 대표들로 구성되었고 전 세계 아니뱁티스트(재침례) 교회가 협력해 만든 단체다.

6·25 전쟁으로 대구와 경산에는 많은 피난민이 모였지만 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없을 때 메노나이트 선교사들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경산은 선교사들의 생활 배경이었던 농업 활동과의 연관성으로 20년 동안 총 74명의 봉사자(선교사)가 활동했다.

메노나이트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물자구제사업과 직업학교, 가족·어린이 지원프로그램과 전쟁미망인 자활을 위한 재봉기술교육 등을 담당하며 경산·대구를 중심으로 한 물자구제사업은 전국적으로 퍼져 이북과 흑산도까지 이르렀다.

특히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전쟁고아들을 위해 경산의 신천동 산 11번지 일원 9만 5천 평과 22채의 건물을 사들이고 일부는 정부로부터 임대를 받아 1953년 10월에 기술학교를 설립했다.

6년 과정의 기술학교에는 철공과 목공, 인쇄, 농업 등을 교육해 북한과 남한의 각 도에서 피난 온 전쟁고아들이 입학했으며 경북도지사와 경북도의회 의장, 경북대 총장, 사회사업가, 동산병원 부원장 등이 이사로 참여하는 등 전쟁 이후 경제 회복에 일익을 담당했다.

유산보존회는 지난 2022년 신천동 산 11번지 일원의 유적을 조사해 기숙사와 학교, 계사, 돈사, 교회, 정비소, 창고, 사택, 연구실 등의 현존 건물을 확인했다.

유산보존회 관계자는 “선교사들이 떠나며 소유했던 모든 재산을 한국인들에게 남기고 떠나 현재는 이들 부지가 사유지가 되었지만, 지역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후손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직업학교 등 메노나이트 선교사들의 유산은 보존할 가치가 있다”며 “사라진 문화유산은 안타깝게도 복원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 남아 있는 유산을 잘 지키는 것도, 활용하는 것도 후손의 역할이다”고 강조했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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