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영 수필가
정미영 수필가

경북대학교 신년음악회에 다녀온 친구가 동영상을 보내왔다. 뮤지컬배우 최정원이 활약한 대목을 꼭 보라는 당부와 함께. 얼마나 감동적인 무대였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최정원은 10년 만에 초대를 받아서 왔다고 했다. 10년마다 불러주신다면, 10년 뒤 66세가 되는 해에 이곳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가 기다려진다며, 관객과 나눈 따뜻한 마음을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어 행복할 것 같단다. 사랑스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뮤지컬 ‘맘마미아’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17년 동안 무대에 서 왔다. 그런 이유로 기네스북에 오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단일 역 단일 작품으로 1천300회 이상 부른, 아바의 명곡이자 ‘맘마미아’의 명곡 ‘The Winner Takes It All’을 열창했다. 풍부한 감정의 몰입이 스며든 노랫말의 서사가 전해지자 내 가슴이 아리고 저렸다.

노래와 입담에 푹 빠져 있었는데 벌써 앙코르곡을 부를 순서가 되었다. “저는 이 곡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뒤에 이어지는 그녀의 말이 압권이었다. 저는 훗날 80세 90세가 되는 어느 날,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을 때 딸에게 묘비명으로 이 가사를 써달라고 했어요. ‘신나게 춤춰 봐. 인생은 멋진 거야. 기억해. 넌, 여러분은, 당신은, 최고의 댄싱 퀸입니다.’ 그녀의 ‘Dancing Queen’ 노래와 춤에 관객들이 함성과 박수로 호응하는 기분 좋은 순간, 카톡방이 들썩였다.

먼저 본 친구들이 저마다 감상평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그 중에 한 친구가 “나도 어떻게 살다 갈 건지, 묘비명을 생각해 둬야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다른 친구가 “나는 미영이 북콘서트가 생각나면서 조지 버나드쇼의 묘비명이 떠오르더라.”라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에게 익숙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묘비명은 오역이라는 말과 함께 해석이 분분하다. 아무튼, 친구 말의 본질은 ‘우물쭈물’이 나와 같다는 의미였다.

내가 평소 우유부단하다고 느꼈단다. 그것이 취향이 정립되지 않은 탓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고 했다. “단어를 하나하나 쓰고 지우고 앞으로 써나갈 글감을 하나하나 쌓아두었다가 시의적절하게 꺼내 쓰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고’ 그래서 최선의 것을 선택할 때까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던 거구나! 우물쭈물이 있어서 감동 있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구나. 우물쭈물이 있어서 오래 전 지나간 사람들과의 소중한 경험들과 그때 나눴던 사소한 대화들도 모두 차곡차곡 쌓아놓고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러면서 자신은 “우물쭈물이 없구나. 새로운 것 다른 것 흥미로운 것으로 바로바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구나. 두 사람이 참 반대구나.”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나는 미영이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너처럼 새로운 것 다른 것 흥미로운 것으로 바로바로 넘어가는 결단력을 배워 큰일을 한 번 내어 보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해볼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얼마나 근사한 위로인가? 40년이 된, 막역한 벗들이 내게 건네는 훈훈한 마음이 있기에 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힘을 얻고, 내가 빛이 날 수 있는 거구나. 지금껏 내게 맡겨진 업무를 할 때에는 야무지게 매듭지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우유부단할 때가 많았다. 여럿이 모여 음식을 선택할 때나 여행지를 고를 때 등 나의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배려보다 답답함과 불편함으로 크게 다가갔을 것이다.

나라는 실존의 뿌리는 부모님이다. 그 곁뿌리로 친구들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객관적 관점과 거리를 두고 성찰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자가 치유의 변명을 굳이 하자면, 내가 생각하기에 대부분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런데 우유부단한 나를 한없이 보듬어 품어 주고 자존감을 세워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는 한 ‘우물쭈물’ 좀 하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