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연기, 소행성 L2001은 돌연 사멸했다. /언스플래쉬

마침 그날 과학전문기자는 모처럼 긴 휴가 중이었고 이를 대신하던 인턴 기자는 메일을 정리해 윗선으로 올렸다. 멋진 1면 기삿거리-속 시끄럽고 기상천외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정치, 경제적, 사회적 기사들을 제치고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를 찾던 데스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헤드라인은 이랬다.

‘악마의 연기와 함께 지구로 돌진하는 천체 발견, 소행성 L2001’

소행성 L2001은 시민 전체, 지구 전체가 바라보는 존재가 되었다. 다른 신문들과 언론들에서는 앞다투어 기사를 쏟아냈다. 천체물리학계에서 공식적인 입장- 100%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꼬리의 성분이나 소행성이 지구에 위협이 될 확률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을 내놓았지만 대중들이, 언론이 주목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높지 않다.’는 대목이었다.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며 심지어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 되었고 ‘높지 않다.’는 것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미국의 NASA에서 공식적으로 ‘소행성 L2001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선언했음에도 사람들은 ‘꼬리 가스의 위험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느니 ‘거의 없다는 것은 있다는 것이다.’거나 하는 해설 기사를 찾아 읽고 ‘좋아요’ 버튼을 눌렀고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견된 비밀 기지’나 ‘퇴역한 우주 왕복선 수리 중’과 같은 콘텐츠를 공유했다.

소행성 L2001의 명칭도 바뀌었다. 사람들은 소행성 L2001에 대한 첫 기사 제목으로부터 딴 이름 ‘악마의 연기’로 소행성을 부르기 시작했다. 유해물질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지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말은 이제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재기나 도피처를 찾기 위한 움직임은 크지 않았다. 고양이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 쥐처럼 가만히 있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일어나 출근을 하고 가족들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밤이 되면 잠을 잤고 가끔은 술을 마셨다. 주말이면 어딘가로 몰려갔지만 초월자에게 무엇을 빈다든가 다 같이 저 세상으로 가자 같은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핵미사일을 쏘아 부숴버리자.’, ‘그래서 뭐 어디로 도망가라고?’, ‘하긴 망해도 싼 존재지, 인류는.’ 같은 이름, 그와 유사한 이름을 건 독립 채널들과 SNS 영상들은 항상 검색순위 상단에 위치해있는 것과는 상반된 일상을 보며 사회학자들은 기이한 현상이라 평했고 이는 또한 연구의 대상, 기삿거리가 되었다. 어느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회학자는 ‘우주라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3D 재난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고 있는 관객’과 같은 인상을 받는다면서 제발 깨어나라고 그 소행성이 스크린을 뚫고 우리에게로 올 것이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이 방영되던 시간 소행성 L2001은 태양과 지구가 늘어선 뒤쪽에 위치해있었고 꼬리 또한 지구의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천문학자가 그 사실을 설명하며 ‘울지 말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소행성 L2001은 처음부터 가스 꼬리를 가진 혜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최근의 연구결과가 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데 이제와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 그저 아름다운 우주의 신비 정도일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울먹이는 사회학자로부터 소행성은 돌고 도는 것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천문학자가 그것도 모르느냐, 제발 먼 곳에서 일어나는 가십거리처럼 여기지 말아달라는 핀잔과 충고를 들었다. 소행성 L2001이라 부르지 말라, 악마의 연기라 부르라. 사회학자가 덧붙여 말했고 ‘그저 소행성에 연기가 생겼다고, 아니면 원래부터 있던 혜성의 가스 꼬리일 뿐인데 악마니 뭐니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억지가 아닌가? 무슨 성분인지,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가만있는 소행성이 무슨 죄인가?’라 항변하는 천문학자를 사회자가 말리면서 토론은 끝났다.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 소설가·내과의

2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른 사건들, 이야기들이 악마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눌렀고 악마의 연기는 관심 순위의 아랫단으로 내려왔지만 사람들은 소행성 L2001라는 이름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3개월이 지난 12월 27일 악마의 연기, 소행성 L2001은 돌연 사멸했다. 애초에 지구를 향해 돌진하지도 않았고 그러겠다는 의지도 없었던, 실제 연기, 꼬리에 유해 성분이 있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소행성 L2001은 불꽃 하나 없이, 우주를 울리는 굉음 하나 없이 사멸했다. 누군가는 고온의 연기에 둘러싸여 스스로 증발해버린 것이라 말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악마의 연기가 소멸되기를 기원했던 전 인류의 손가락질이 이루어낸 쾌거라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