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충택 논설위원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됨에 따라 대구·경북지역 영세기업들이 초비상 상태다.

앞으로 이들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는 예외 없이 해당 사업장을 대상으로 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게 된다.

고용부는 이번 주부터 3개월 동안 전국 83만7천개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산업안전 대진단’을 실시한다. 산업안전감독관 전원이 이 업무에 매달린다고 가정해도 1인당 1천개 기업을 맡아야 하는 모양이다. 당연히 ‘졸속 진단’이 우려된다.

그동안 중대재해법에 무감각했던 소규모 사업장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적용 대상이 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자영업자(음식점, 빵집, 커피전문점 등)들은 지금 혼란에 빠져 있다. 전문가에게 상담 서비스를 받으려 해도 컨설팅 비용이 엄청나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금형·주물업 등 이 지역 공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뿌리산업 사장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뜨거운 쇳물이나 무거운 금속을 다루는 공정이 있는 업종이라 직원들이 잠시만 방심해도 산재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은 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김용균씨 사고를 계기로 민주당에서 발의해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법은 하청 업체를 포함해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진에게는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7일부터 새로 이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종사자는 800만명 정도 된다.

법률 내용 중 형사처벌 근거가 되는 경영진 과실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고의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더라도 재해만 발생하면 대부분 과실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포항에서는 이 법률 시행으로 바다낚시 명소인 영일만항 북방파제가 폐쇄 위기에 놓이는 사태도 발생했다. 길이 500m 이상인 대형 방파제도 이 법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의 바탕에는 우리나라 기업이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희생시키며 성장했다는 의식이 깔렸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근로자 안전을 침해하는 것은 범죄행위이고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일리가 있긴 하지만, 산재사고의 모든 책임을 기업주에게만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2년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대부분 아직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안전시설을 완벽하게 유지하더라도 개인이 주의하지 않으면 사고예방이 불가능한 사업장도 많다.

대구·경북지역 중소기업 중에는 만약 사고가 나서 사장이 구속되면 그날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고 폐업할 경우 근로자들은 일터를 잃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근로자수가 5명이 넘는 사업장 중에서 사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직원 수를 4명 이하로 줄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영세사업장 기업주나 근로자들에겐 중대재해법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인다는 것을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