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잠자리를 앵오리라고 한다./부채를 부치라고 하고 고추를/고치라고 한다./우리 고향 통영에서는/통영을 토영이라고 한다./팥을 퐅이라 하고 팔을/폴이라고 한다./코를 케라고 한다./우리 고향 통영에서는/멍게를 우렁싱이라 하고 똥꾸멍을/미자발이라고 한다. 우리 외할머니께서는/통영을 퇴영이라고 하셨고 동경을/딩경이라고 하셨다. 그러나/까치는 까치라고 하셨고 까치는/깩깩 운다고 하셨다. 그러나/남망산은/난망산이라고 하셨다./우리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내 또래 외삼촌이/오매 오매 하고 우는 것을 나는 보았다.”- 김춘수의 ‘앵오리’

김춘수는 경남 통영이 고향인 시인이다. 나의 은사이기도 하셨던 시인은 강한 경남 억양을 쓰셨다. 실제로 통영을 ‘토영’이라고 발음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시는 마치 경남 통영 사투리를 가르치는 텍스트 같기도 하다. 시 전편 어디에서도 향수나 추억이나 그리움이라는 감성을 환기하는 감정적 시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인의 고향 통영에 대한 향수와 ‘앵오리(잠자리)’를 잡던 유년시절의 추억과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방언이라는 시어가 갖는 위력을 일깨워 주는 김춘수의 시는 경남 바닷가 통영의 개인적 추억을 환기하면서, 동시에 그가 살았던 시대를 보여준다.

이 시의 진가는 시이면서 동시에 언어학의 텍스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김춘수는 이 한편의 시를 통해 경남방언과 우리 국어의 역사를 매우 깔끔하게 정리하였다. 국어학 강의시간이라면 교수에게는 최소한 3주는 강의해야 할 주제이고 학생들에게는 매우 지루하게 배워야 할 내용의 학습 분량이다. 음운변화와 아래아의 역사적 변천, 움라우트 현상과 전부모음화, 비음화에 대한 설명을 이처럼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시인의 능력에 국어학자로서 존경의 헌사를 올릴 따름이다.

“우리 고장에서는/오빠를/오라배라 했다./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오오라베 부르면/나는/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나는 머루처럼 투명한/밤하늘을 사랑했다./그리고 오디가 샛까만/뽕나무를 사랑했다./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이슬마꽃 같은 것을…./그런 것은/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참말로/경상도 사투리에는/약간의 풀냄새가 난다./약간 이슬 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이 마르는/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박목월의 ‘사투리’

경주 사람 박목월의 ‘사투리’는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의 경상도 경주의 방언적 특징을 그대로 시어로 표현하였다.

이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라. 큰 소리의 질박하고 꺼칠꺼칠한 경주의 방언이 마치 곁에서 들리는 듯이 고스란히 전해올 것이다.

목월의 언어 감각은 청각에서 시각으로, 다시 후각으로 이어지는 방언의 연주곡과 같다.

오래 잊고 지냈던 ‘오오라베(오빠)’가 불러오는 경주의 사투리에서 촉발된 경주에 대한 그리움은 수채화같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고향의 정경을 소환하고 그것을 사투리의 소리로 듣고 이어 그림 속에서 냄새를 맡는 시인의 공감각적 능력은 탁월하다. 이슬 맺힌 풀과 황토흙 타는 냄새는 오래전 고향 떠나 타향살이 하는 시인의 고향 경주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감지된다.

많은 시인들이 즐겨 사용한 방언은 시적 미학을 돋보이게 하는 최고의 시어이다.

홉스테디(Hofstede, 1980)는 언어적 소통은 집단 구성원과 또 다른 인간 집단 구성을 구별하는 정신의 총체적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방언이나 언어적 차이가 단순한 차이나 차별이 아닌 화려한 다양성의 꽃이라는 인식이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생물학적으로 생태의 다양성이 종 보존의 안정성을 가져다주듯이 언어의 다양성도 인간 지식과 정보의 지속적인 상속을 보장해 주는 요소로 그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