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 대구지사장
홍석봉 대구지사장

지역균형발전이 화두가 된 지 20년이 지나도록 제자리걸음이다. 역대 정부가 줄기차게 외치고 국정 지표로 삼아 추진한 일이다. 말만 앞섰고 행동은 따라주지 못했다. 의지도 약했다. 현 정부 들어 동서화합과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추진하던 ‘달빛고속철도’도 무산위기다.‘선거용 포퓰리즘’ 주장과 ‘예타제도 무력화’ 논리에 떠밀려 좌초되는 형국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사건이 뜬금없이 지역균형발전 문제를 소환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방문 도중 피습됐다. 이 대표는 피습 직후 입원했던 소방 헬기를 이용,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갔다. 지방의료계가 부글부글 끓었다. 의사 단체들이 속속 비판 성명을 냈다. 헬기 이송은 의료 전달 체계를 뛰어넘는 선민의식과 내로남불 행태라고 주장한다.

이 대표의 서울행은 본의 아니게 국민에게 ‘지방 의사는 실력이 없다. 환자는 무조건 서울 빅5 병원에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다 “잘하는 곳에서 수술해야 한다”는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이 불나는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한순간 부산은 ‘뒤떨어진 지역’‘이류 병원’이 됐다. 부산대병원은 최고의 응급의료 체계를 갖추고도 홀대당하고 말았다.

응급 현장에서는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이고 의료진의 결정 권한이 존중돼야 한다. 그런데도 응급 의료 체계의 상식과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가족의 뜻이라고 했지만, 의사 소견을 따라야 했다.

이 대표는 피습 직전 가덕도 현장에서 “지방 소멸 문제는 각별하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될 부분”이라며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하던 중이었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지방에도 뛰어난 진료와 연구역량을 갖춘 국립대병원이 있다”고 평가하는 등 공공의료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랬던 이 대표가 자의든 타의든 서울로 갔다. 서울 응급이송 치료는 지방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나 다름없다. 민주당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 의식 속에 도사린 서울공화국의 표출이었다.

지역균형발전은,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지방의 몸부림이자 국정 주요 과제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핵심 가치의 하나다. 게다가 민주당은 지역 의사제와 지방 공공의대 설립 입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런 민주당이 이번 사태로 자가당착에 빠졌다. 민주당의 내로남불과 지방 외면에 비난이 쏟아졌다.

한 트로트 가수의 ‘그 이불솜 베게 다 버리고 우리 이제 서울 가서 살자….’라는 노래처럼 우리는 은연중에 모든 것을 팽개치고라도 서울 가서 살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산 정약용도 자식들에게 ‘서울에서 벗어나지 마라’고 당부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조선은 (중국보다) 문명이 뒤떨어져서 한양에서 몇십 리만 멀어져도 원시사회”라며 “어떻게든 한양 근처에 살면서 문화의 안목을 잃지 마라”고 했다.

200년 전 다산이 그랬던 것처럼 ‘인(IN) 서울’이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문제는 ‘인 서울’ 때문에 지방은 다 죽어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