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연

높이 떠 있는

흰 가로등 안에

날벌레들이 까맣게 쌓여 있고

다시 침잠하리라 생각했던 겨울은 기록적인 폭설 같은 것은 없었다

오래된 나무 아래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의자가 하나씩

생겨나 누군가를 기다려 보려 했지만

기다림보다는 기다림을 버리는 것이 더 쉬었다

이따금 상처 없는 바람이 왔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쏟아지던 햇살이 이쪽과 저쪽에 걸쳐진

횡단보도를 건너 돌아오지 않는 숲으로 갔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겨울은 “하염없이” 쓸쓸한 계절. 사라진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기다림보다는 기다림을 버리는 것이 더 쉬”운 겨울의 긴 적막. 폭설도 내리지 않은 겨울엔 시인의 마음은 “날벌레들이 까맣게 쌓여 있”는 가로등처럼 답답하다. 이 쓸쓸한 내면 풍경 속으로 “상처 없는 바람”이 불거나 햇살 역시 “근심 없이” 쏟아지곤 했지만, 이 햇살마저 “횡단보도를 건너” 숲으로 가 버리는 계절이 겨울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