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안作 ‘yearning’

24절기 가운데 두 번째가 우수(雨水)다. 태양의 황경이 330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도 2월 19일(음력 1월 10일)이 우수(雨水)다.

우수(雨水)는 봄이 시작되었지만, 땅에 아직도 겨울의 기세가 드센 시기다. 절기로는 봄에 해당하지만, 찬 기운은 아직 물러갈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그 시점에서 내리는 비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우수(雨水)는 눈 대신 비가 내리며, 강의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수에 내리는 비는 온 천지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24절기 가운데 비 우(雨)가 들어있는 절기는 우수(雨水)와 곡우(穀雨)다. 우수의 비는 겨울 추위를 녹이는 비이고, 곡우의 비는 씨앗을 뿌리라는 의미다. 이 시기에 비가 오지 않으면 봄 가뭄이 온다고 한다. 봄 가뭄이 닥치면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기는커녕 말라 죽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봄비는 농사를 비롯한 만물의 생장에 큰 영향을 주기에 비 우(雨)를 넣은 듯하다. 특히 농경문화권에서는 농작물 수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절실하다.

우수에 내리는 비는 겨우내 얼었던 땅을 녹여주는 비다.‘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속담도 있다. 또한 언 땅을 녹여주면서 흙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을 깨우는 역할도 한다. 만물이 우수의 비로 인해 눈을 뜨고, 얼었던 흙도 윤기가 나기 시작하는 시기다. 농촌에서는 담벼락을 수리하고, 밭도 손질하면서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음력 1월은 주역으로는 지천태(地天泰)괘에 해당한다. 지천태괘는 위로 음효 3개(☷)가 있고, 아래로는 양효 3개(☰)가 올라오고 있는 모양이다. 물상으로 보면 땅속에 숨어있는 양기가 땅 위로 올라오는 형국이다. 경복궁 교태전(景福宮 交泰殿)은 경복궁의 내전으로, 왕비의 침전(寢殿)으로 사용되었던 전각이다. 전각의 명칭인 교태(交泰)는 지천태괘(泰卦)의 천지교태(天地交泰)에서 유래한 것으로,‘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에 있는 땅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고, 아래에 있는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서로 화합하는 모습이기에 즐거울 태(泰)가 되는 것이다. 지천태괘의 반대는 천지비(天地否)괘다. 하늘은 위로 올라가고, 땅은 아래로 내려가서 영원히 만날 수 없고, 화합할 수 없으니 아닐 부(否)가 되는 것이다.

명리에서 인월의 인(寅)은 동물로 호랑이다. 시간으로는 새벽 3시에서 5시까지다. 어둠이 사라지는 시간이다. 특히 종교인들이 새벽예불이나 새벽기도로 하루를 여는 때다. 호랑이가 여명(黎明) 무렵에 먹이를 사냥하러 나서듯이 낯선 환경에도 두려움이 없고 진취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어려움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창의적인 일을 시작하면서 역동적이고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저력을 가지고 있다. 인월에 태어난 사람의 장점이기도 하다.

새해를 정월(正月)이라 부른다. 즉, 한 해를 바르게 살려면 첫걸음이 반듯해야 하기에 정월이라 불렀다. 호칭 하나에도 교육적이고 자기성찰이 되도록 했던 것이 우리 문화의 전통이다. 2024년에는 설날(2월 10일)이 지나면 우수, 그리고 정월 대보름(2월 24일)이 이어진다. 1년 열두 달 중 가장 큰 달이다.

이 시기에 달풀이 또는 월령체(月令體)라는 노래를 불렀다.‘정월(正月)이라 십오야(十五夜)에 망월(望月)하던 소년들아, 망월도 하려니와 부모봉양 늦어진다’는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정성 가득한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쥐불놀이, 달집태우기와 보리밟기 등 풍속을 즐겼다. 달집태우기는 달집이 훨훨 타야 마을이 평안하고 풍년이 든다고 한다. 지금은 지자체에서 관광 또는 홍보 차원에서 행사하고 있다. 보리밟기는 서릿발에 뜬 보리를 살짝 밟아 통풍을 차단함으로써 뿌리가 마르거나 썩는 것을 방지하는 농사일의 한 가지다.

옛날 농촌에서는 우수 즈음에 장(醬)을 담갔는데, 정월(正月)에 담그는 장을 으뜸으로 쳤다. 우수에 장을 담그면 약 40일 후인 청명과 곡우 사이(대략 4월)에 장물과 된장을 가를 수가 있어 된장을 발효하기에 최적의 날이 되므로 우수에 담근 장을 으뜸으로 쳤다.

류대창명리연구자
류대창 명리연구자

이 시기에 장을 담가야 맛과 색이 변하지 않기에 추위에도 불구하고 장 담그기가 행해졌다. 세월이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이때를 맞춰 장을 담그는 가정도 더러 있다. 시기로는 우수 전후 삼일, 정월 마지막 날인 오일, 그믐, 손 없는 날(음력 중 끝자리가 9와 0인 날)이다. 오전에 장을 담그면 장에 벌레가 생기지 않아 좋은 날이라고 여겼다.

중국에서는 원소절(原宵節)이 정월 대보름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문 앞에 초롱을 달고, 오색 천으로 장식하여 불꽃놀이를 즐겼다. 마치 불타는 나무와 은색 꽃 같다는 뜻으로 화수은화(火樹銀花)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농경 문화권에서는 절기에 맞춘 놀이와 풍습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의 협동심과 향토 사랑을 키웠다. 정월 대보름은 새해를 맞이한 뒤 처음 보는 큰 보름달이다. 달은 여성과 대지와 물을 상징하므로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가 많았다. 추운 겨우내 지친 몸과 마음을 춤과 노래로 달랬던 것이다. 오늘날 함께 즐겼던 절기 풍습이 점차로 잊혀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수 천 년 동안 이어진 놀이와 풍습은 쉽사리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몸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