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지에 정원까지 한 몫에 보는 전북 익산

미륵사지
미륵사지

많은 여행지 중 전북 익산만큼 볼거리가 많은 고장도 별로 없다.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흔적이 깃든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는 물론 춘포역 일대의 근대 문화유산까지 역사 유적지가 가득하다. 억새가 가득한 만경강은 그야말로 낭만의 절정이다. 여기에다 세상 어떤 수목원보다 매혹적인 정원까지 있다.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갖추고 있다. 초겨울 낭만적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전북 익산 여행이 어떨까?

 

무왕이 지었다는 왕궁리 유적·미륵사지는 ‘역사 교육장’
비밀의 정원인 ‘아가페 정양원’선 이국적 감성으로 힐링
호소카와 저택·춘포역 등은 ‘시간 여행지’로 즐겨볼 만

 

국립익산박물관
국립익산박물관

◇화려한 백제문화의 정수가 도시 곳곳에

익산은 백제 문화의 중심지다. 미륵사지, 정림사지에서 쌍릉까지 곳곳에 백제의 흔적이 가득하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낭만이 묻어 있는 1천년 역사의 도시가 바로 익산이다. 익산 여행의 시작점이 미륵사지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륵사지는 미래에 오실 부처님인 미륵불을 모시는 절터였다.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의 사찰로 30대 무왕(600~641년)에 의해 창건되었고, 17세기경에 폐사됐다. 미륵사지가 발굴되기 이전에는 백제 창건 당시에 세워진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 1기, 그리고 석탑의 북쪽과 동북쪽 건물들의 주춧돌과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정면 양쪽에 세워진 당간지주 1쌍(보물 236호)이 남아 있을 뿐이다. 미륵사지는 현재 있는 터의 규모만으로도 한국 최대 규모 사찰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미륵사지는 중문-탑-금당이 일직선상에 배열된, 이른바 백제식 ‘1탑-1금당’ 형식의 가람 세 동을 나란히 병렬시킨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폐사된 곳이라 예전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미륵사지의 형태는 대단히 정교하고 이채롭다. 미륵사지의 석탑은 현존하는 한국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탑이다. 본래 미륵사에는 3기의 탑이 있었다. 중원에는 목탑,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이 있었다. 중원의 목탑이 언제 소실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익산의 또 하나의 역사유적지는 왕궁리 유적터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힌다. 이 유적에는 백제 무왕 때인 639년 건립했다는 제석정사(帝釋精舍)터를 비롯해 관궁사·대궁사 등의 절터와 대궁 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토성터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익산읍지’ 등의 문헌들은 이곳이 ‘옛날 궁궐터’‘무왕이 별도(別都)를 세운 곳’ ‘마한의 궁성터’라고 적고 있다.

왕궁 보석테마관광지 내에 있는 보석박물관은 11만 점 이상의 진귀한 보석과 원석을 자랑하는 전국 유일의 보석 전문박물관이다. 다양한 기획으로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보이는 기획전시실과 7개의 장으로 구성된 상시전시실에서 펼쳐지는 보석과 원석의 향연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익산은 유서깊은 역사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황산 나루터를 통해 들어온 종교의 도시이기도 하다. 김대건 신부의 상륙을 기념해 성당을 건립했는데 성당이 있는 익산시 망성면 ‘화산(華山)’의 너른 바위 근처에 있다 해서 나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바위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다. 1906년 순수 한옥 목조건물로 지어진 후 1916년까지 증축을 거듭하면서 한·양 절충식 건물로 형태가 바뀌었다. 성당 앞면은 고딕양식의 3층 수직종탑과 아치형 출입구로 꾸며져 있고, 지붕과 벽면은 전통 목조 한옥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바위성당 근처에 있는 성당포구마을은 50여 가구의 조용한 포구마을이다. 성당포구마을 강변을 따라 색색의 바람개비가 꽂혀 있는 성당포구바람개비길이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바람개비길이 5㎞ 넘게 이어진다.

성당면 와초리에 있는 익산교도소세트장도 가볼 만하다.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 폐교부지 위에 세워진 국내 유일의 영화 촬영용 교도소 세트장. 3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다.
 

아가페 정원
아가페 정원

◇무료 양로원의 부속정원이 핫한 명소로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에 있는 아가페 정양원(靜養院)은 ‘비밀의 정원’으로 불린다. 고(故) 서정수 신부가 정원을 처음 가꾸기 시작한 후 50년이 지난 최근까지 외부에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양원 관계자를 제외하고 익산 토박이들조차도 이곳 정원을 둘러본 이가 손에 꼽힐 정도다.

아가페 정양원은 원래 서 신부가 오갈 곳 없는 노인 30여 명을 보살피던 무료 양로원이었다. 국내에서 ‘복지’라는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에 자선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정양원이 자리를 잡으면서 서 신부는 시설 내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자연 친화적인 수목 정원을 조성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매달 적지 않은 돈이 드는데 기부금에만 의지할 수 없어 정원에서 자란 나무를 판 수익금으로 양로원 운영비와 생활비를 충당한 것이다.

50년의 세월이 흘러 아가페 정양원의 나무들은 부쩍 키가 크고 수종도 다양해졌다. 여느 수목원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로 조경이 화사해졌다. 규모도 100만㎡나 돼 하나의 거대한 동산에 가깝다. 넓은 대지 위에 갖가지 수목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특유의 향기를 발산하는 정원으로 성장했다. 익산시는 사회복지법인 아가페와 함께 아가페 정양원의 부속정원을 ‘아가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이고 지난 9월부터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전북 제4호 민간정원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길이 1천670m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붉은빛 백일홍, 마치 공작새가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친 듯한 공작단풍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관상수가 즐비하다. 우아하게 나뭇가지를 늘어뜨린 가문비나무와 쭉 뻗은 후박나무, 잣나무까지 더해져 어떤 정원에서도 보지 못한 이국적인 자태를 뽐낸다.

정원의 랜드마크는 하늘과 맞닿은 듯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다. 아가페 정원 설립 초기에 심은 500여 그루의 나무는 높이가 40m에 이르는 명품 산책로가 됐다. 숲길 사이로 들어서면 마치 동화 속 신비의 숲으로 발을 디딘 듯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하늘로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길도 인상적이지만 그 앞에 듬성듬성 있는 당단풍에도 시선이 머문다. 앙상한 가지에 물기가 쭉 빠져버린 꽃이 달렸다. 정원 초입의 어마어마한 밤나무도 이채롭다.

숲속에 자리한 작은 도서관에서는 책을 꺼내 들고 의자나 잔디에 앉아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아가페 정원은 수선화, 튤립, 목련 등 34종의 꽃들이 향연을 벌이는 여름철도 아름답지만 가을에서 겨울까지도 인상적인 황금빛으로 물들어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호소카와 저택
호소카와 저택

◇근대 역사의 흔적 남아 있는 춘포

아가페 정원과 함께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 춘포면 춘포리다. 일제 강점기에 대장촌(大場村)으로 불리던 춘포리는 요즘으로 치면 대규모 농업을 위해 만든 신도시였다. 춘포면 중심에 있던 일본인 마을에는 호소카와, 이마무라, 다나카 등 3개 농장을 중심으로 일본 규슈 중부 지방 구마모토에서 건너온 일본인 이주민과 지주들이 조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춘포 역사지에 따르면 전 일본 총리의 할아버지인 호소카와가 운영하던 농장은 3개 군 100촌락에 걸친 9917㎢(1천정보)의 대규모 농장이었다고 한다. 여의도 면적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패망 후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아직까지 춘포에는 일본인이 살던 가옥들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곳은 호소카와 농장 주임관사 가옥이다. 일본식 정원까지 갖춘 대저택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폐역이 됐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인 춘포역도 꼭 들러볼 만하다. 역사 벽면에는 춘포역이 아니라 대장역으로 불리던 시절 이곳을 오갔던 학생들의 교복과 기차 시간표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까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최병일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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