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와 아키
꽃의 부드러운 몸에는
시간의 어둠과 빛이 새겨져 있다
목을 길게 빼고
그리운 쪽을 바라본다
(중략)
꽃은 시간의 손바닥을 펼치려 한다
손에 짙게 밴 피비린내
일본인인 우리의 죄가
붉은 물시계 속으로 언제까지고 떨어져 내린다
풀리지 않는 시간은
얼음처럼 단단한 채이지만
일본의 동북지방 재난 희생자에게 바친 기도는
하늘 높이 퍼진다
빛 쪽으로 향하는 것
빛에 둘러싸여야 하는 것
그 고통의 언어는
새로 돋아난 영혼의 날개를 움직인다
(한성례 옮김)
1954년 생 일본 시인 사가와 아키는, 위의 시에서 일본 역사에 대해 반성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어서 주목된다. 그는 ‘꽃’을 “시간의 어둠과 빛이 새겨져 있”는 무엇으로 상징화한다. 일본의 역사적 시간이 새겨져 있는 그 꽃 속 시간을 펼치면, “언제까지고 떨어져 내”리는 붉은 시간의 죄스러운 ‘피비린내’가 난다. 일본 외부 민족에 대한 폭력뿐만 ‘동북지방 지낸 희생자’에 대해서도 스며들어 있는 피비린내.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