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환

도솔암에서 이제 막 하산하여 선운사 마당 한가운데 들어서니 천지간 눈이 내린다 겨울 아침 절집의 고요란 이런 것인가 대웅전 뒷산 숲 그늘에 동백은 일러 피지 않고 어디서 날아든 동박새만 떼로 여행자를 반긴다

낮별이 뜨고 무릇꽃이 피면

선운의 눈발이 멎을 것인가

선 채로 길을 떠

나는 숲의 영혼 자작나무

“천지간 눈” 내리는 절 주변의 고요한 풍경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시. 한데 여행자는 누구인가? 화자인가? 자작나무인가? 2연의 3∼4행의 ‘행간 걸림’이 절묘하다. 이 걸림으로 “선 채로 길을 떠/나는” 자작나무가 바로 ‘나’의 영혼임을 암시해주기 때문이다. 여하튼 위의 시는 여행이란 공간 이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특히 영혼의 여행은 자작나무처럼 “선 채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임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