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을 그리다 어반 스케치 여행
⑫ 구룡포 <1>

일본인 가옥거리

아홉 형제 올려보내고 홀로 바다에 떨어진

용 한 마리

구룡포 땅 거닐며 무슨 생각했을까.

땅 천 년, 산 천 년, 물 천 년

삼천 년을 견디었건만

부러진 뿔 뽑힌 발톱 흩어진 비늘들

하나하나 주워 담으며

또 하루하루 씹어 삼켜야 할

눈앞의 천 년은 얼마나 아득했을까.

 

구룡포공원에서 내려다본 구룡포항
구룡포공원에서 내려다본 구룡포항

원망과 허탈을 되새김질하며 백 년

쌓아 올린 토성에 제 몸을 감추며 백 년

말목장성의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백 년

한적하게 그물 씻는 어민들을 지켜보며 백 년

어느새 구백 년의 시간을 갑옷처럼 입으며

백 년만 지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하늘을 향해 날으리라 다짐할 때에

포구에 정박한 이국의 배에서는

낯선 말씨의 사람들이 내렸다.

그들이 순진한 어민들의 그물을 낚아채고

도미와 고등어와 정어리와 고래를 배에 가득 실어갈 때

한때 튼튼했던 군마들도 이젠 허물어진 성벽도

아무런 보호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들은 기와집을 세우고 송덕비를 세우고

마침내 그들의 신까지 이 땅의 머리 꼭대기에 세웠다.

돌계단을 올라 도리이(鳥居) 너머 이글거리는

이국 신의 음험한 미소를 바라볼 때에

용은 마침내 천 년의 꿈을 내려놓았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관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관

아홉 형제 올려보내고 구룡포에 홀로 남아

또다시 천 년 묵은 용 한 마리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르나

이국의 신사를 허물어 낸 구룡포의 꼭대기에는

마침내 용왕당이 세워졌다.

- 글 : 이가은(서울대 국문과 박사 수료)

 

임주은
임주은

임주은 1982년 포항에서 태어났으며 대구가톨릭대 공예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2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서양화 작가로 참여했다. 현재 포항문화재단 이사, 포항청년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포항지부, 경북청년작가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