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재

아주 늙은 개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

어쩐지 걷는 게 불편해 보여

옳지 그렇게 천천히 괜찮으니까

올라가서 이렇게 기다리면 돼

어느 쪽이 아픈지 알지 못한 채

둘만 걸을 수 있도록

길이 칼이 되도록

귤을 밟고 사랑이 칸칸이 불 밝히도록

여섯 개의 발바닥이 흠뻑 젖도록

누군가와 네 발 달린 ‘늙은 개’가 걷고 있는 뒷모습. 늙은 개가 아픈 건지 누군가가 아픈 건지 “걷는 게 불편해 보”이는데, 아픈 이들이 서로 돌봐주며 길을 걷는 저 모습에서 시인은 사랑을 본다. 사랑의 길은 ‘칼’처럼 날카로우면서도 귤처럼 부드럽다. 그 길을 밟으면 사랑은 “칸칸이 불 밝히”며 빛나는 것, 서로를 기다려주며 저기 길 가고 있는 누군가와 개의 “여섯 개의 발바닥”은 사랑으로 “흠뻑 젖”고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