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
김수정 동해해녀사진연구소장

김수정 동해해녀사진연구소장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 김수정 사진가와는 20년 가까이 인사를 나누던 동네 이웃이었다. 특유의 활달한 붙임성으로 해녀들과 작업한다고 했을 때 만해도 이토록 진심인지 몰랐다. 그 후로는 다양한 곳에서 김수정 석 자를 듣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지난 봄, 포항 북구 방석리 바닷가의 질펀한 굿판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밤을 새우는 동해안별신굿을 렌즈에 담으면서도 고단한 기색은 없었다. 되려 사라져가는 것을 기록하는 사명감으로 하나라도 놓칠까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사진가를 드센 바다와 떠들썩한 굿판으로 부르는 것일까. ‘사진의 섬 송도’ 우수작가로 선정되어 전시를 열고 있는 김수정 동해해녀사진연구소장을 ‘갤러리포항’에서 만났다.

 

강인한 해녀 모습 카메라에 담은지 5년째, 지난달 구룡포·호미곶 중심 ‘경북해녀협회’ 출범

맨몸으로 드센 바다에서의 작업… 사라져 가는 것 기록, 하나라도 놓칠까 긴장 늦추지 않아

29일까지 갤러리포항서 ‘사진의 섬 송도 우수작가전-동해해녀’ 전시… 흑백 사진으로 꾸려

-해녀가 사용하는 어구에 초점을 맞춘 전시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해녀들이 허리에 착용하는 ‘나바리’이다. 허리띠에 납을 연결한 것으로 수심에 따라 무게를 조절한다. 수심이 얕은 곳은 가볍게 착용하고 깊은 곳은 무겁게 착용한다. 뭘 잡느냐에 따라 나바리의 무게가 다르다. 해삼을 작업할 때보다 말똥성게 작업할 때 상대적으로 가볍게 한다. 나바리는 생각보다 무겁다. 연로한 여성이 메기는 더욱 그렇다. 무거울수록 잠수하기 수월하지만 물 위로 올라오기 힘들다. 물질에 지쳐 기운이 빠지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만큼 무게를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물 위로 올라가는 일은 해녀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흑백 사진만으로 이번 전시를 구성한 이유가 궁금하다.

△흑백의 단순함으로 잠수복을 입은 해녀를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 제복 판타지라고 해야 하나. 평상시는 평범한 촌로지만 잠수복으로 갈아입으면 그렇게 멋있게 보이더라. 해녀들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보면 모질고 기구하기 짝이 없지만 해녀들에게는 강인한 성정이 있다. 운명처럼 또는 곤궁한 삶이 밀어내어 어쩔 수 없이 물질을 하게 됐더라도, 해녀들은 하나같이 바다가 고요하고 편안하다고 말한다. 물속이 예쁘다고 하더라. 맨몸으로 드센 물살을 가르는 해녀의 강인함을 색을 섞지 않고 전하고 싶었다.

 

‘사진의 섬 송도 우수작가초대전-동해해녀’가 포항시 북구 죽도로에 위치한 갤러리포항에서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김수정 동해해녀사진연구소장의 ‘포항의 해녀들’ 작품.
‘사진의 섬 송도 우수작가초대전-동해해녀’가 포항시 북구 죽도로에 위치한 갤러리포항에서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김수정 동해해녀사진연구소장의 ‘포항의 해녀들’ 작품.

-해녀들을 렌즈에 담은 지 얼마나 되나.

△부친 고향이 호미곶이고 할머니와 고모는 해녀였다. 그 모습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만 하던 차에, 2019년 포항문화재단의 권역별 사업 참여로 해녀들과 안면을 튼 뒤로 귀찮다고 할 정도로 쫓아다녔다. 당시 자료를 찾아보니 동해안 해녀에 관해서는 전무했다. 기록이 없다는 건 이들의 삶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다행히 최근 해녀 문화에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달 구룡포와 호미곶을 주축으로 경주, 영덕까지 아울러 경북해녀협회가 출범했다. 이들과 제주해녀축제를 참석해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가와 해녀들의 친근함이 사진에 배어 나온다.

△지금에야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오지만, 처음에는 뒤통수밖에 못 찍었다. 해녀들과 편안해지면서 서두르지 않고 구도를 잡거나 기법을 발휘할 여유가 생겼다. ‘사진쟁이’ 왔다면서 싫은 티를 팍팍 내던 해녀의 가족도 있었다. “내 마누라 찍지 말라”며 카메라를 박살 내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얼마나 무섭던지 벌벌 떨면서 쫓겨났는데 그대로 물러서면 안 되겠더라. 다음날 다시 가서 카메라값 천만 원이 있느냐고 따졌다. 그 뒤로 만날 때마다 인사를 드리니 지금은 포기했는지 받아주신다. 아내에게 험한 일을 시키는 것에 자격지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해녀들이 사진을 남기지 않으려는 이유는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사돈이나 친척들에게 험한 일 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거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해녀를 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다.

-촬영 현장이 늘 카메라를 반기지는 않을 텐데, 노하우가 있나.

△작업 현장에서 스텝을 자처한다. 누가 나바리를 안 들고 왔다거나, ‘꼬께이(가기)’에 새 줄이 필요하다면 신속하게 나선다. 바닷물이 뚝뚝 떨어지는 해녀를 태우려고 뒷좌석에 대형 비닐을 구비해 놓았다. 미역 수레를 끌고 가다가 내가 보이면 실어달라는 분도 계신다. 흔쾌히 옮겨드리면 그냥은 또 안 보내주신다. 두둑이 배를 채우고 미역까지 얻어 온다.

-듣자 하니 “해녀 집의 수저 개수까지 꿰고 있다”던데.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해녀들도 밥으로 정을 나눈다. 점심쯤 되면 밥 먹고 가라고 전화가 걸려 온다. 힘들게 잡은 전복이나 소라, 미역도 나눠준다. 촬영하다 피곤하면 한 시간씩 낮잠을 자다 나오거나, 급하면 화장실을 내어주는 해녀도 있다. 사람 사는 정이 그렇다. 나라고 빈손으로 갈 수 있나. 수박이나 생수, 바나나, 에너지바를 사 들고 간다. 언제 만날지 모르니 늘 음료를 싣고 다닌다.

-몇 년을 찍어도 더 찍을 것이 남아있나.

△해녀들은 기량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상군은 바닷일을 전업으로 하지만 중, 하군은 식당이나 농사, 해산물이나 그물을 다듬는 허드렛일도 한다. 해녀들의 부지런함은 그냥 부지런한 정도가 아니다. 한창 물질을 할 때는 며칠 따라다니다가 몸살이 날 정도였다. 해녀들은 물질을 안 하면 밭일하고, 밭일이 없으면 소일거리를 찾아서라도 쉬지 않는다. 국숫집 하는 해녀 언니네 놀러 가보면 장사를 하면서 어느 날은 오징어를 손질하고 다른 날은 성게를 다듬는다. 그러면 그걸 촬영한다. 그러니 갈 때마다 새롭다.

-해녀 하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 해녀를 먼저 떠올린다. 피사체로서 제주 해녀와 동해안 해녀의 차이가 있나.

△제주는 배를 타고 들어가서 작업을 한다. 반면 동해는 해녀가 걸어 들어가서 작업하기 때문에 연안에서 촬영이 가능하다. 바닷속 지형이 다르니 작업 여건은 물론 수확물도 다르다.(올해 동해안은 성게와 미역 수확량이 반으로 줄었고 문어도 시원찮다.) 제주 해녀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공동체 문화이다. 육지 해녀들 또한 그들만의 공동체 문화를 가지고 있고 조명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김수정 동해해녀사진연구소장의 ‘포항의 해녀들’ 작품.
김수정 동해해녀사진연구소장의 ‘포항의 해녀들’ 작품.

-사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예술이라고 한다. 해녀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가.

△해녀의 강인한 생명력과 끈기를 존경한다. 드센 바다에도 끄떡없는 해녀들은 절대로 꺾이지 않는다. 선주이던 남편의 억 소리 나는 빚을 물질로 갚더라. 해녀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고 마을을 살렸다. 이런 분들을 기억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날 정도다. 해녀 사회도 고령화가 진행된다. 60대는 젊은 축에 들어간다. 70대 초반이 최고로 활발하고 수확량이 좋다. 여든이 넘으면 보통 은퇴하지만 일을 놓지 못하는 분도 있다. 해녀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때 최대한 기록해 두고 싶다. 고된 삶을 지나온 이들의 강인함에 집중해서 말이다.

-동해안별신굿도 관심을 갖고 기록하는 것으로 안다.

△매 순간이 위험인 바다에서 해녀들은 민간신앙을 신봉한다. 날이 궂은 날은 궂어서 걱정이고, 운 좋은 날이 계속되어도 불안하다. 물질은 욕심낼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가는 사람의 숨이 아닌 물의 숨 ‘물숨’을 만난다. 제주 출신의 80대 해녀는 1년에 한 번 용왕제를 지낸다. 바닷가에서 쌀과 과일을 정성들여 차리고 두 손을 모아 “용왕님 덕분에 살았다”고 빈다. 해녀들은 오래전부터 액을 막고 가정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무속에 의존했다. 코로나 사태로 미뤄졌던 굿판이 지난해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작년 구룡포 풍어제를 시작으로 영덕 금진리와 노물리, 포항 방석리와 영암 3리 등을 촬영했다. 굿판에는 낯설고 신기한 장면이 많다. 한번은 깃대를 든 아주머니가 심하게 흔들려 유심히 봤더니 깃대가 흔들리는 것이었다. 마을마다 기본 굿에 더해 색다른 굿이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다지만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의 심성도 들어가게 마련이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나.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는 컨테이너가 있다. 작업을 기다리면서 몸도 지지고 뒹굴며 쉬는 곳이다. 해녀들은 청력이 안 좋아서 고함치는 수준으로 대화한다. 컨테이너가 윙윙 울릴 정도이다. 그 안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고 싶은데 아직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해녀 프로필 사진을 촬영했다. 시간 날 때마다 경북 동해안 해녀들을 모두 만날 계획이다. 카메라를 메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겁다. 해녀는 평생을 같이하고픈 피사체이다.

김수정 동해해녀사진연구소장은

대구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사진영상을 전공했다. 꾸미는 것보다 자연스러움을 선호하고, 역사성과 사회성을 가진 대상에 관심이 간다. 성냥공장과 한지 공장, 코발트 광산, 호스피스 환자 등을 렌즈에 담다가 2019년부터 해녀를 주로 촬영한다. 개최한 전시로는 ‘꽃·사진·포슬린(포항중앙아트홀, 2015)’, ‘빛의 그림자(부산리빈갤러리, 2018)’, ‘호랑이 꼬리 해녀 이야기(꿈틀갤러리·새천년기념관·아라예술촌)’, ‘동해, 567km(미디어갤러리, 2021)’, ‘story in 구만리(갤러리포항, 2022)’, ‘해녀(부산리빈갤러리, 2023)’ 등 10여 차례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이 있다. 동해안 해녀 문화를 다룬 저서 ‘숨과 숨사이 해녀가 산다’, ‘포항의 해양문화’, ‘바다가 보물이라’ 등에 사진작가로 참여했다.

/배은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