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의 기억, 영일만의 격랑 -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 3 황 인 ⑤
근대 한의학의 선구자 석곡 이규준

석곡기념관 전경. /포항시 제공

 

1885년 포항 동해면 임곡리 출신인 석곡은 근대 한의학의 선구자로 알려졌어. 원래 유학에 바탕을 둔 학문에서 출발해 성리학까지 통달한 분이지. 놀라운 일은 이분이 모든 학문을 독학으로 했다는 것이지.

내가 처음 석곡 묘소에 간 게 2008년이야. 소문학회 회원들이 석곡 묘소의 참배를 다닌 지 14년쯤 되었을 때지. 그 후로 방송에 나갈 때마다 석곡을 이야기했고, 그다음 해 묘소를 참배할 때는 지역 언론사의 기자들과 함께 갔어. 그때 석곡 묘소 참배하는 것을 YTN에서 소개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지.

포항이 낳은 큰 인물로 석곡(石谷) 이규준(李圭晙, 1855~1923)이 있다. 석곡은 포항 동해면 출신으로 한의학은 물론 문학과 철학, 천문학 등을 폭넓게 연구한 학자이며 선비 의사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시는 석곡을 기리는 기념관을 지난 7월 말 임시 개관했고, 오는 10월에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남구 동해면 도구리 일원에 건립된 이 기념관은 지상 2층 규모다. 석곡의 삶과 학문을 재조명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널리 알려온 이가 황인 선생이다. 황인 선생이 석곡기념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곡은 누구이며 그의 발자취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여국현(이하 여) : 선생님은 근대 한의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석곡 이규준을 재조명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석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황인(이하 황) : 사실은 나도 석곡을 잘 몰랐어. 그런데 우연히 포항 시내에서 한의원을 하는 김학동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석곡이 참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지. 김학동 원장이 소속된 소문(素問)학회에서 해마다 10월 마지막 일요일에 석곡 선생의 묘소를 참배한다고 하더군. 얼마나 대단한 분인가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석곡 묘소에 참배할 때 따라갔지. 현장에 가서 석곡의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석곡이 참 대단한 학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

 

석곡기념관 내부 모습. /포항시 제공
석곡기념관 내부 모습. /포항시 제공

여 : 그때 어떤 말씀을 들으셨는지요?

황 : 석곡은 독학했고, 전국을 다니며 대학자들과 토론하면서 학문을 쌓았지. 어느 날 청도의 한 서당원장이 학문이 대단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 그런데 그때 거기서 무위당(無爲堂) 이원세(李元世)가 공부를 하고 있었어. 생판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서 스승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기가 봐도 학문이 대단한 거라. 이원세가 석곡을 붙들고 배움을 청하러 찾아가겠다고 하니 석곡이 대구에 서병오라는 사람 집에 가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했지. 그래서 이원세가 서병오 집에 8년 정도 머물게 돼. 서병오가 누군가 하면 어린 나이에 대구에서 천재라고 소문이 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눈에 들었고, 나중에는 영천 군수에 오른 사람이지. 서병오가 혈압이 높았는데 누구도 못 고치는 걸 석곡이 고쳐준 뒤로 석곡에게 한의학을 배우게 되었어. 하여간 이원세가 서병오 집에 머물면서 석곡의 제자가 된 거야.

여 : 서병오와 이원세 두 분 다 석곡의 제자들인 셈이군요. 그렇다면 그분들을 통해 소문학회가 만들어져서 석곡을 기리게 된 건가요?

황 :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금 더 이야기가 있어. 나중에 이원세가 부산에 갔을 때, 부산에서 한의학을 공부하던 사람들이 이원세를 모시고 함께 공부하게 되었지. 인원이 점점 늘면서 이원세가 스승인 석곡의 학문을 연구하자고 제안해 석곡학회가 창립되었어. 그렇게 석곡학회를 만들긴 했는데, 여기서는 석곡의 한의학 공부만 하는 거라. 하지만 석곡은 수학, 천문학, 유학 등 다방면의 학문에 관심을 가졌던 터라 석곡학회를 한의학만 공부하는 소문학회로 바꾼 거지. 이분들이 매년 음력 10월 마지막 일요일에 석곡 선생의 묘소에 참배하면서 석곡 선생을 기려온 거야.
 

석곡기념관 내부 모습. /포항시 제공
석곡기념관 내부 모습. /포항시 제공

여 : 하지만 포항에서는 아직 석곡이 누구인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황 : 1885년 포항 동해면 임곡리 출신인 석곡은 근대 한의학의 선구자로 알려졌어. 원래 유학에 바탕을 둔 학문에서 출발해 성리학까지 통달한 분이지. 사실은 유학과 성리학을 증명하기 위해 한의학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놀라운 일은 이분이 모든 학문을 독학으로 했다는 것이지. 그러면서 삼십 대에 ‘춘추(春秋)’, ‘주역(周易)’, ‘의례(儀禮)’ 같은 경전을 산정(刪定)해 26책으로 된 ‘육경소주(六經疏註)’를 펴냈어. 어디 그뿐인가. ‘논어’, ‘대학’, ‘중용’, ‘예운(禮運)’, ‘곡례(曲禮)’, ’효경(孝經)’, ‘명심보감’ 등도 산정해 많은 책을 펴냈고. 특히 유학의 이기론(理氣論)을 벗어나 기일원론(氣一元論), 심성정동일론(心性情同一論) 철학과 심양기론(心陽氣論) 의학의 바탕이 되는 ‘석곡심서(石谷心書)’는 대단한 저서로 인정받지.

 

석곡기념관 내부 모습. /포항시 제공
석곡기념관 내부 모습. /포항시 제공

여 : 독학으로 그 모든 학문을 습득하셨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산정’은 무엇인지요?

황 : 산정(刪定)은 꼭 필요하지 않은 자구(字句)나 문장을 다듬고 정리하는 것을 말해. 석곡은 경전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운 학문의 견해를 바탕으로 썼지. 그런 자세가 석곡의 탁월함이 아닌가 싶어.

여 : 그러려면 경전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물론 석곡의 학문적 입장도 확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 같습니다. 석곡은 한의학자로도 유명하다고 하셨지요?

황 : 선생은 말년에 한의학 연구에 성심을 다했지. 한의학의 원전이자 이론의 기초라고 일컬어지는 책이 ‘황제내경(黃帝內經)’인데, 선생은 이 책의 본래 내용 가운데 필요 없는 건 정리하고 꼭 필요한 것만 추려서 ‘황제소문절요(黃帝素問節要)’를 쓰셨어. 또 ‘동의보감’을 선생의 이론으로 다시 정리해서 ‘의감중마(醫鑑重磨)’를 펴냈지. 약초에 관한 저서인 ‘본초(本草)’는 지금도 많은 한의학자가 찾는 명저 중의 명저야. 그러니 “북쪽에 사상의학을 주장한 이제마가 있다면, 남에는 이규준이 있다”는 말이 회자되지.

 

석곡기념관 내부 모습. /포항시 제공

여 : 자료를 찾아보면 석곡은 ‘부양론(扶陽論)’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알기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황 : 부양론은 말 그대로 양기를 북돋운다는 말이지. 석곡은 인간의 몸의 중심은 마음(心)이라고 보았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자리한 심장(陽)이며, 심장의 기운이 부족할 때 모든 병이 생긴다는 거야. 이는 중국의 주진형(朱震亨)이 주장한 이론과는 반대되는 이론이지. 거기서는 음기의 부족이 병의 근원이라 보았으니까. 그래서 기운이 약해지면 음의 기운을 돋우는, 즉 신장의 기운을 살리는 처방을 했어. 그런데 석곡은 양이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중요한 것은 사람 몸에 양의 기운이 부족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 그래서 어릴 때나 나이 들어서나 양기를 돋우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거야.

여 : 선생님 말씀을 들을수록 석곡은 대단한 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 : 내가 처음 석곡 묘소에 간 게 2008년이야. 소문학회 회원들이 석곡 묘소의 참배를 다닌 지 14년쯤 되었을 때지. 그 후로 방송에 나갈 때마다 석곡을 이야기했고, 그다음 해 묘소를 참배할 때는 지역 언론사의 기자들과 함께 갔어. 그때 석곡 묘소 참배하는 것을 YTN에서 소개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지.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안상우 박사가 그 방송을 보고 나를 찾아와 석곡의 학문을 번역해주겠다고 해서 큰 힘이 되었어. 그렇게 석곡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지.

 

석곡 선생 묘비.
석곡 선생 묘비.

여 : 선생님의 그런 노력이 마침내 석곡기념관 건립으로 이어지게 되었군요.

황 : 여하튼 석곡기념관이 건립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고 앞으로 많은 시민이 찾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석곡기념관은 소강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48호로 지정된 석곡 선생의 저술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수장고가 있는 1층과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영상관이 있는 2층으로 구성돼 있다. 외부는 전통가옥 구조물인 서까래 형태의 처마를 적용한 모양을 하고 있다. 포항시는 석곡의 일생과 학문, 사상 등을 소개하는 상설 전시와 함께 시문학, 유학, 천문학, 수학 등 석곡의 학문은 물론 후학과 관련한 주제 전시와 소장품 특별전 등 다양한 기획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황 인

1950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대구로 이주해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영남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동해중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면서 포항과 인연이 닿았으며, 포항정보여고와 동성고에서 2008년까지 재직한 후 정년 퇴임했다. 포항 지역의 고인돌을 처음으로 조사·발굴해 ‘영일군사’에 소개했고, 지역 민속놀이인 ‘월월이청청’을 조사·발굴한 후 포항정보여고 학생들과 공연해 제7회 청소년 민속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흥인군의 비석과 남파 대사의 비석을 발견해 비각을 세우도록 했고, 석곡 이규준 선생의 목판을 경북 문화재 자료로 지정하게 했다. 또한 석곡의 사상과 학문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알려 석곡기념관 건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포항시사’ 집필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포항문화원 향토조사 연구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22년 제12회 애린문화상을 수상했다.

대담·정리 : 여국현(시인) / 사진 촬영 : 김 훈(사진작가) / 사진 제공 : 황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