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
프리다이버 이수형

울릉도 바다를 잠수하는 이수형 프리다이버.
울릉도 바다를 잠수하는 이수형 프리다이버.

심해를 맨몸으로 유영하는 프리다이버의 모습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외계의 생명체 같다고나 할까. 실제로 바닷속 환경은 우주와 가장 유사하다고 알려진다. 행성을 탐사하기 전 우주비행사들이 대서양 아래서 훈련하는 이유기도 하다. 바다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프리다이버가 많다고 한다. 바닷속 가장 신비로운 생물들에게 다가가는 빠르고 효율적 방법이 프리다이빙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유영하듯 바닷속을 헤엄치려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주를 유영하듯 바닷속을 오가는 사람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도전하는 프리다이버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비영리 프리다이빙 단체 한국지부로 연락했고, 포항에서 ‘수심 좀 탄다’는 이수형 프리다이버와 만날 수 있었다.

 

포항이 고향이라 물에서 하는 스포츠 좋아했죠
서핑 강사를 하면서 프리다이빙에도 관심 가져

프리다이빙은 숨을 오래 참는 ‘수면무호흡’과
‘수평 잠영’ ‘수직하강’ ‘자유하강’ 등의 종목 있어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 성장하는 재미 느껴

울릉도 바다서 프리다이빙 대회 개최하고 싶어
해외 어디 내놔도 부럽지 않은 다이빙 포인트

-프리다이빙을 사진으로는 접했지만 아직은 생소한 스포츠이다.

△최근 소셜미디어를 타고 수중에서 촬영한 프리다이버 사진이 인기를 끌면서 실제로 배우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프리다이빙은 물속에서 호흡을 돕는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잠수하는 운동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에서 벗어나(free) 한계에 도전한다. 국내에 도입된 지 10여 년 됐다. 종종 해외에서 배우고 들어온 사람들은 있었지만,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스킨스쿠버와 무엇이 다른가.

△‘스킨스쿠버’는 스쿠버다이빙과 스킨다이빙을 아우르는 말이다. ‘스쿠버다이빙’은 공기통을 사용하는 수중 스포츠이고, ‘스킨다이빙’은 우리가 흔히 아는 ‘스노클링’이다. 프리다이빙은 장비 없이 자신의 숨을 갖고 하는 운동이므로 스쿠버다이빙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계기는.

△포항이 고향이라 어릴 적부터 물에서 하는 스포츠를 좋아한다. 6년여 전 서핑 강사를 하면서 프리다이빙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국내에서 배우다가, 강사를 가르치는 트레이너 자격증은 필리핀에서 땄다. 그전에는 프리다이빙의 전신인 ‘스피어 피싱’을 취미로 즐겼다.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작살이나 총으로 물고기를 잡는 원초적인 어로 활동으로 현재 국내에서는 불법이다.

-훈련은 주로 어디서 하나.

△제한 수역과 개방 수역이 있다. 제한 수역이라면 수영장과 다이빙 풀이 있고 개방 수역이라면 먼바다를 말한다. 포항에는 전용 풀장이 없기에 울산과 대구, 울진으로 가야 한다. 이곳들의 최대 깊이는 5미터이다. 국내 최대 수심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사설 풀장으로 수심 36미터이다.

-수심 5미터를 내려가려면 숨을 얼마나 참아야 하나.

△초급자가 묻는 말도 안 되는 질문 중 하나이다. 숨을 참는 건 하기 나름이다. 프리다이빙은 숨을 오래 참는 운동이 아니다. 예를 들어 10미터를 다녀오는 과정이라면, 몇 초 만에 다녀오든 상관이 없고 10미터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숨을 참는 시간은 훈련을 지속하면 늘어난다. 맨 처음 나는 1분 15초 정도 숨을 참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훨씬 길어졌다. 참고로 강사 자격을 따려면 최소 4분 이상 숨을 참아야 한다.

-숨을 오래 참는 훈련은 어떻게 하나.

△편안한 상태를 유지한 뒤 ‘호흡 충동’을 다스려야 한다. 숨을 참고 어느 정도 지나면 딸꾹질이 난다거나 침이 꼴깍 넘어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등의 불편한 반응이 일어난다.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못하고 몸에 쌓이면서 나타나는 호흡 충동 반응이다. 호흡 충동을 어떻게 조정하고 능숙하게 다루는지가 관건이다. 호흡 충동 간의 거리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누구나 불편하다. 욕심을 부리면 물에서 기절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숨을 참다가 기절까지 한다면 위험한 운동 아닌가.

△무리하면 저산소증으로 블랙아웃(일시적 기절)이 오기도 한다. 기량을 늘리려는 선수들에게 종종 나타난다. 숨을 조금씩 늘리면 문제없다. 목표치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벽해지면 조금씩 늘린다. 성급하면 안 하던 실수도 하게 되니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늘 상태를 의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프리다이빙은 2인 1조로 움직인다. 다이버의 근긴장이나 떨림, 날숨, 청색증 등을 살피는 사람을 ‘버디’라고 한다. 다이버 또한 버디에게 수신호로 상태를 알려야 한다. 올라오는 도중이나 수면으로 상승하기 직전에 블랙아웃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버디가 수면 아래 3분의 1지점까지 마중 갔다가 같이 올라온다.

 

이수형 프리다이버.
이수형 프리다이버.

-프리다이빙 경기는 무엇을 겨루는지 궁금하다.

△먼저 정지된 상태에서 오래 숨을 참는 ‘수면무호흡(STA, Static Apnea)’이 있다. 수면에 떠서 숨을 참는 이 종목의 국내 최고 기록은 7분 30초 정도 된다. 세계 기록은 10분대이다.

그리고 물속에서 멀리 나아가는 ‘수평 잠영(DYN, Dynamic Apnea)’, 모노핀을 착용하고 내려가는 ‘수직하강(CWT, Constant Weight)’, 줄을 잡고 내려가는 ‘자유하강(FIM, Free Immersion)’ 등이 있다. 더 오래, 더 깊이, 더 멀리 가느냐를 겨루는 것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목표 거리를 호흡이 되는 만큼 다녀오는 것이다. 마라톤의 시간 단축 훈련처럼 자신의 기록을 깨는 운동이다.

-수영을 잘해야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강생의 3분의 1은 수영을 못 한다. 물공포증 극복이 목표인 수강생도 있다.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하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교육할 때도 “천천히 하세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무리하지 않기 위해 밟아야 할 단계가 있다. 다이빙하기 전에는 반드시 짧은 수심을 오가면서 자신의 체력 상태를 점검한다. 무리하면 목 안이 찢어지거나 폐를 다친다. 표가 안 나는 상처지만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다이버 스스로가 조심한다. 다이빙하기 직전에는 힘을 빼고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 호흡이 필요하고, 그다음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최종 호흡을 한다. 깊게 수심을 탈 땐 숨을 멈추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회복 호흡을 한다. 가볍게 내뱉고 재빨리 들이마시길 세 차례 반복하고, 회복이 끝나면 버디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야 한다.

-숨을 참아가며 물속으로 들어가는 까닭은.

△대부분 다른 종목은 다른 사람과 겨루는 스포츠라면 다이빙은 스스로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이다. 나를 이기는 느낌, 성장하는 재미를 느낀다. 1년이 넘도록 진전이 없던 수강생이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붙들고 있더니 얼마 전에는 강사 과정에 도전하겠다고 연락이 왔더라. 프리다이빙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그럴 때 흐뭇하다.

-물에 들어가면 무슨 생각이 드나.

△보통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 호흡 외에는 잡념이 사라지는 점이 프리다이빙의 매력이다. 바다로 나가면 바닷속 생물들 보는 재미에 푹 빠진다. 필리핀의 말라파스쿠아나 보홀, 사이판 로타섬, 일본의 오키나와, 미아케지마 등으로 다이빙 투어를 다닌다. 최근에는 고래를 보러 일본에 다녀왔다. 고래는 공기 방울을 싫어해서 산소통을 메면 가까이서 마주하기 힘들다. 일본은 돌고래 투어 상품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상품화만 안 됐을 뿐 울릉도 오가는 선박에서 돌고래를 볼 수 있다.

-바닷속 상황이 안 좋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떤가.

△바다가 너무 나빠지고 있다. 특히 해양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 전국이 다 그런 것 같다. 최근에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왔는데 그나마 울릉도는 쓰레기가 적었고 독도는 다행히도 깨끗했다.

-프리다이빙을 즐기기에 포항은 어떤 곳인가.

△대구 경북지역에서 접근성이 이 정도로 좋으면서 시야가 잘 확보되기로는 포항만 한 곳이 없다. 하지만 전국 다이버들에게 포항은 먹거리 다이빙으로 악명이 높다. 화산지형인 제주나 울릉도와 달리 포항의 해저 지형은 밋밋한 편이다. 해저에 볼거리가 없다 보니 포항을 찾는 다이버의 90%가 전복이나 문어를 보고 온다. 그러니 다이버들이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 플로빙 활동에도 어민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에서 아이디어를 구하면 어떨까? 다이버들의 성지인 이집트 바다에는 24미터짜리 코끼리 동상이 있고, 스페인의 물속에는 박물관이 있다. 바닷속에 볼거리를 만들면 관광객도 늘고 수산물을 무단으로 채취하는 사건도 감소할 것이다. 강릉은 최근 바다에 난파선을 빠뜨리고 해산물 불법 포획이 줄었다고 한다. 포항시에, 스틸아트페스티벌에서 전시한 작품을 바다에 빠뜨려 달라고 건의한 적이 있다. 로봇 태권브이 같은 조각상이 바닷속에 있다면 훌륭한 다이빙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개인적으로는 동해에서 수심 80미터 이상을 타는 것이 목표이다. 마지막으로 내려간 수심은 65미터이다. 울릉도에서 프리다이빙 대회를 개최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동해는 냉수대가 심해 여건상 어려움은 있지만, 울릉도 바다는 20미터 이상 시야가 확보되어 해외 어디 내놔도 부럽지 않은 다이빙 포인트이다. 전 세계의 아름다운 바닷속을 더 많은 이들과 다니고 싶다. 투어를 다녀온 사람들이 평생의 버킷리스트를 이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율을 느낀다.

이수형 프리다이버는

용인대학교에서 체육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격투기 종목을 두루 섭렵해 용무도 4단, 태권도 4단, 유도 3단, 주짓수 브라운 벨트 등 합이 무려 17단에 달한다. 자동차 관련 사업으로 돈도 제법 벌었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쫓아 프리다이버가 됐다. 포항에서 유일하게 프리다이빙 강사를 가르치는 트레이너이며, 수중사진 강사 트레이너, CMAS(세계수중연맹) 프리다이빙 심판, 민간해양구조대원 등으로 활동한다. 다이빙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며 전 세계 바닷속을 누비고 있다.

/배은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