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환
가을날 은행나무는 샛노랗게
멸망하고 있다
대개 사람처럼 나무도
나이 들면 속이 썩어지는데
은행나무는 겉부터 노랗게 문드러지고 있다
뭐가 그리 대수냐
살다 보면 지금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은행나무는 아는 듯하다
그래서 11월의 가을날
땅바닥에 엎드려 환히 불 밝히고
법문을 듣고 있나 보다
동네 어귀 은행나무길 서성이다 보면
어둑한 마음 깨어난다
“나이 들면” 자신의 삶이 “멸망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저 은행잎 떨어뜨리고 있는 은행나무처럼 “노랗게 문드러지고 있다”는 느낌. 하나 은행나무는 자신의 멸망에 “뭐가 대수냐”는 모습이다. 아마 그 모습은 삶과 죽음은 영원히 회귀한다는 진리를 은행나무가 잘 알고 있기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에게 저 나무는 “땅바닥에 엎드려 환히 불 밝”히는 존재자, 깨달음을 주는 존재자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