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예천 산사태 현장 가보니
감천면 진평2리 초입 들어서자
집채만한 돌·구겨진 차 뒹굴어
군인들 탐지봉 들고 진창 수색
약 1㎞ 남짓 벌방리선 2명 실종
귀농한 지 1년 된 친구 잃은 60대
눈 앞 아버지 놓친 아들 통곡만

“내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당해봅니다. 그동안 여기 마을에서 나고 살면서 전국을 강타한 태풍이라던지 어느 어느 지역에서 수해를 입었다는 뉴스만 보고 살았지 우리 마을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정말 어어 하는 사이에 집이고 뭐고 다 쓸려 내려갔어요”

16일 오전 산사태 피해 현장에 만난 유재선 예천군 벌방리 마을 이장은 마을을 휩쓸고 간 끔직했던 순간을 되새기며 몸서리를 쳤다.

지난 13일부터 16일 사이 예천 지역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강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용문면·효자면·감천면·은풍면이 큰 피해를 입었다. 예천 지역에서만 이번 폭우로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실종(오후 6시 기준)됐다. 특히 효자면과 감천면, 은풍면에는 산사태까지 발생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됐다.

산사태가 발생한 감천면 진평2리와 벌방리 마을에는 15일 오전 2시부터 강한 폭우가 내렸다고 한다. 그래도 주민들은 무슨 일이 있겠냐는 심정이었다. 지금까지 비로 인해 피해를 본 역사가 없었다는 사실에 주민들은 안도했다. 여태 볼 수 없었던 폭우가 쏟아 졌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그렇게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13일부터 군청이고 면사무소고 재난에 대비하라는 문자가 쇄도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일일이 위험에 대비하라는 연락이 왔을 때에도 이런 사태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한순간에 마을이 토사에 뒤덮였다. 그것도 지척에 있던 진평2리와 벌방리 마을이 동시에 사고를 당했다.

16일 오전 비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와 벌방리는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산에서 물과 함께 밀려 내려온 토사를 피해 간신히 몸만 빠져 나온 주민들도 상당히 많았다.

진평2리 마을 초입부터 이번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볼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밭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곳에는 집채만한 바위와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들이 마을을 집어 삼켰고, 마을 주민들이 타고 다니던 차량은 종잇장처럼 구겨진 채 떠밀려 마을 곳곳에 나뒹굴고 있다.

산사태가 일어난 곳으로 좀 더 올라가자 매몰된 실종자를 찾기 위한 소방과 경찰, 군인들이 무릎까지 들어가는 진창으로 변해버린 곳에서 철제 탐지봉으로 찔러가며 실종자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이곳 진평2리에는 70대 노부부가 살던 집이 산사태로 매몰돼 남편은 사망한 채 발견되고 아내는 토사에 휩쓸려 실종됐다.

다행히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주민들은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삶에 터전을 잃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복구는 생각도 못하고 그저 하늘만 원망하며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다.

일부 피해 복구를 위해 굴삭기 등이 마을에 쓸려 내려온 잔해를 정리하고 있었지만, 며칠 사이 복구가 될 상황이 아닌듯 보였다.

마을 한 주민은 “주민 상당수가 자식들이 있는 타지역으로 대피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한 상태”라며 “복구는 둘째치고 당장 전기와 수도가 끊겨 집에 있을 수 없다. 일부 주민들은 지난해 수확한 사과를 마을 냉동창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전기가 끊겨 다 버릴 처지다. 그런데도 더 큰 피해를 입은 분들이 있어 한마디도 못한다. 상황이 절망적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토했다.

진평2리에서 약 1㎞ 남짓 벌방리가 있다. 이곳 마을도 산사태로 주택이 토사에 묻혔있다. 마을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한 모습니다. 이 마을 역시 바위와 한 아름들이 나무들이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실종자도 2명이나 발생했다.

이 마을 주민들도 순식간에 일을 당했다고 한다. 자다가 바위가 굴러가는 소리가 나길래 봤더니 이미 마을로 토사가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 일부는 대피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토사에 그대로 매몰되거나 물살에 휩쓸렸다.

그 때문인지 주민들이 대피해 있는 벌방리 마을회관에는 주민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이 마을에서 실종된 A씨(62)의 언니와 남편 등 가족들이 통곡하는 소리였다. 이들을 지켜보는 마을 주민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A씨는 지난해 3월 이곳으로 귀농했다고 한다. 경기 수원에 살 당시 유독 마음이 잘 맞았던 삼총사 중 두 명이 예천으로 귀농하면서 다같이 모여서 농사짓고 재밌게 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A씨도 귀농을 결심했다.

A씨의 친구인 B씨(64)는 “귀농해서 사는 게 좋다고 자랑하고 했는데 지금은 너무 후회된다. 다 같이 살자고 내가 말하기도 했고, 나 때문에 이런 큰일을 당한 것 같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 마을에서는 A씨 외에도 70대 노인 C씨도 폭우로 실종됐다. 마을진입로에 있었던 C씨의 집은 빗물에 휩쓸려 터만 남았다. 같이 물살에 휩쓸렸던 C씨의 아들 D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벌방리 마을 이장에 따르면 D씨가 하소연하기를 당시 C씨와 D씨가 집 앞에서 같이 물에 휩쓸려 컨테이너 조각을 붙잡고 떠내려갔다고 한다. 그 와중에 D씨는 주변에 있던 비닐 등을 잡고 뭍으로 올라와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유재선 이장은 “아들이 얼마나 울었는지 그 모습을 보고 있기도 힘들었다. 아버지를 눈 앞에서 잃었으니 그 죄책감이 오죽했겠는가. 동네 사람들도 얘기를 듣는데 다들 눈시울을 붉혔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을을 복구하기 위한 조치는 이뤄지고 있었다. 마을 어느 곳을 봐도 성한 곳이 없었으나 주민들은 하루빨리 복구가 이뤄져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기를 강하게 희망했다.

마침 이날 이곳을 찾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이철우 도지사, 김형동 안동·예천 국회의원, 김학동 예천군수도 벌방리 마을회관에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만나 최선의 지원으로 조속히 주민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실의에 빠진 주민들을 위로했다. /정안진·피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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