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동해산문’ ‘인생산문’ 복간
오류 수정·각주 등 온전한 복원

포항 출판사 득수에서 최근 복간한 한흑구 수필집 ‘동해산문’(왼쪽)과 ‘인생산문’ 표지.  /도서출판 득수 제공
포항 출판사 득수에서 최근 복간한 한흑구 수필집 ‘동해산문’(왼쪽)과 ‘인생산문’ 표지. /도서출판 득수 제공

한국 수필문학의 고전인 한흑구 수필집이 50여 년 만에 복간됐다.

일지사에서 발간한 한흑구 수필집 ‘동해산문’(1971)과 ‘인생산문’(1974)을 포항 출판사 도서출판 득수에서 최근 문단에서 있는 한흑구 문학에 대한 조명, 포항시 차원의 한흑구 문학관 건립, 한흑구 문학의 온전한 복원 등을 위해 때맞춰 두 권의 수필집으로 복간하게 된 것이다.

한흑구(1909∼1979)는 ‘나무’, ‘보리’, ‘노목을 우러러보며’ 등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작품으로 한국 수필문학의 독특한 경지를 연 문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의 수필집은 오래전에 절판됐고,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국 문학사에서 사실상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부터 미국과 평양, 서울에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던 그가 1948년 포항에 정착한 후로 1979년 작고할 때까지 ‘은둔의 사색가’로 살았기 때문이다.

‘동해산문’과 ‘인생산문’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83편의 주옥같은 수필이다. 한흑구의 수필은 자연 속에서 성스러움을 찾고 사명을 깨달았으며, 이러한 자세는 그의 작품 속에 일관되게 투영된다. 그는 “모든 예술은 진선미 가운데 미를 찾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런 맥락에서 “참된 것이 아름다운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 참된 것”이라는 존 키츠(John Keats)의 문학관을 신봉했다.

한흑구 생전 모습.
한흑구 생전 모습.

두 번째는 당대 문인 이효석, 유치환, 조지훈, 서정주, 김광주와의 인연 그리고 음악가 안익태와의 미국 시절 이야기다. 중국에서 돌아온 김광주와 미국에서 돌아온 한흑구는 서울에서 만나 직장 생활을 함께하며 거의 매일 술을 마신 술벗이었다. 한흑구와 유치환과의 인연은 평양과 서울을 거쳐 부산 피난 시절, 그리고 포항까지 이어졌다. 부산 피난 시절 한흑구는 동광동에서 조지훈을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됐다. 한흑구가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대학교 신문학과에 다니고 있을 때 만난 안익태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안익태는 한흑구가 음악의 도시 필라델피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한흑구의 뒷바라지 속에 음악가가 될 수 있었다. 그 밖에 김동환, 이효석, 서정주 등과의 애틋한 인연도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서술돼 있다.

마지막으로 한흑구의 수필론이다. 그는 ‘수필론’, ‘수필의 형식과 정신’에서는 수필에 관한 수준 높은 담론을 펼쳐낸다. 한흑구는 수필이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수필론과 이에 바탕한 수필을 통해 한흑구는 수필이 한국 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하는 데 기여했다.

한흑구 수필집 복간본은 일지사 판(版)을 저본(底本)으로 삼았으며, 맞춤법,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법은 국립국어원의 한국어 어문 규범에 따랐다. 또한 비학산(飛鶴山)을 비악산(飛岳山)으로 오기(誤記-‘숲과 못가의 새 소리’, ‘인생산문’)한 것 등 일부 오류는 바로잡았으며, 지금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문인, 단체, 지명에 대해서는 180개의 각주를 달아 한흑구의 작품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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