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남편의 실직으로 고개 숙인 그녀에게

엄마, 고뇌하는 거야?

다섯 살짜리 딸 아이가 느닷없이 묻는다

고뇌라는 말에 놀란 그녀가

고뇌가 뭔데? 되물었더니

마음이 깨어지는 거야, 한다

꽃잎 같은 아이의 입술 끝에서

재앙 같은 말이 나온 이 세상을

그녀는 믿을 수 없다

책장을 넘기듯 시간을 넘기고 생각한다

깨어진 마음을 들고 어디로 가나

고뇌하는 그녀에게

아무도 아무 말 해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길모퉁이에 앉아 삶을 꿈꾸었다

아이의 말은 꾸밈없다. 저 아이가 엄마에게 “마음이 깨어지”고 있냐는 물음은 남편의 실직으로 괴로운 엄마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해낸 것이다. 엄마는 아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깨져버렸다는 진실을,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뇌’한다. 마음이 깨진다는 “재앙 같은 말”을 아이가 말하게 되는 세상은 “믿을 수 없”는 세상, 그래서 엄마는 다른 삶을, 다른 세상을 꿈꾸기 시작하리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