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 대덕산 꽃 여행

검룡소 가는길.

야생화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호랑이의 꼬리를 닮았다는 하얀색의 범꼬리꽃이다.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에는 스님과 동자의 전설이 얽혀 있는 동자꽃이 보인다. 여기는 강원 태백의 대덕산 분주령이다. 분주령(1천80m) 금대봉(1천418m) 대덕산(1천307m)을 거쳐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로 이어지는 능선은 국내 최고의 야생화 군락지이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고 해서‘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여름의 초입인데도 숲길에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하늘은 맑고 눈에 보이는 곳마다 야생화가 피어 있어 마음까지 환해진다. 미국의 명문장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야생화는 단 한순간도 햇빛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날씨에 감사하는 것은 인간보다 꽃”이라고 말했다. 햇살 아래 빛나는 야생화의 흔적을 찾아 여름 여행을 떠나보자.

 

분주령·금대봉·대덕산·검룡소 능선은
국내 최고 야생화 군락지‘천상의 화원’

하늘다람쥐 날고 꼬리치레도롱뇽 인사
참매·대륙목도리담비도 반갑게 맞이해

호랑이 꼬리 닮았다 하얀색 ‘범꼬리꽃’
애처러운 동자 무덤가에 피어나 ‘동자꽃’
이름마다 아름다운 사연 지닌 꽃 천지

검룡소에 다다르면 여행길은 끝났지만
그 향기는 코끝에 묻어 오래도록 취하게

 

금대봉 야생화 군락지.
금대봉 야생화 군락지.

◇여름꽃만 30여 종…길섶의‘야생화 천국’

분주령 야생화 트레킹은 해발 1천268m의 두문동재에서 시작된다. 고지대인 두문동재는 지금도 등산객 외에는 찾지 않는 한적한 곳이지만 예전에는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조선 개국 후 고려의 마지막 신하들이 조선 태조 이성계의 눈을 피해 이곳에 자리 잡고 두문불출한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야생화 천국으로 알려진 두문동재에서 분주령까지의 트레킹 구간은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가 날아다니고 꼬리치레도롱뇽, 참매를 비롯해 대륙목도리담비, 오소리, 고라니, 청설모, 방패벌레, 그림날개나방, 꽃등에, 맵시벌 등 다양한 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 대성쓴풀과 모데미풀, 한계령풀 같은 희귀식물도 발견된 곳이다.

분주령 트레킹은 늘 새로운 느낌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길을 걸으면 신선한 숲의 공기가 산뜻하게 다가온다.

숲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울어대는 벙어리뻐꾸기 소리는 산세를 더욱 깊게 꾸며주고, 분주령 쪽으로 오를수록 숲 또한 점점 짙어진다. 심연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야생화 천국 분주령에서만큼은 등산객도 한 명 한 명 야생화나 다름없다.

길 양쪽으로 야생화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분주령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갈래길이 나온다. 한쪽은 금대봉 방향, 또 한쪽은 분주령 방향이다. 산불조심 기간이어서 막혀 있는 금대봉을 뒤로하고 분주령 방향으로 걷다 보면 확 트인 산봉우리가 보인다.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분주령, 오른쪽 방향으로 솟아 있는 것이 대덕산이다. 나무데크로 이어진 내리막길이 제법 길게 이어진다.

분주령으로 가는 길섶에서 볼 수 있는 여름꽃만 해도 범꼬리를 비롯해 동자꽃, 요강나물, 할미밀망, 산꿩의다리, 좀꿩의다리, 개병풍, 노루오줌 등 족히 30종이 넘는다. 정겹고 미려한 수많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노루오줌·동자꽃…이름마다 갖가지 사연

분주령 가는 길이 매력적인 것은 시기마다 다른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7월에는 개망초와 하늘나리, 일월비비추, 산꿩의다리를 볼 수 있다. 꽃들은 저마다 사연을 지니고 있다. 노루오줌은 노루가 다닐 만한 산에 사는데 뿌리에서 지린내가 나서 노루오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루오줌이 이런 냄새를 풍기는 건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동자꽃에는 애절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어느 암자에 스님과 동자가 살았는데 스님이 마을로 내려갔다가 눈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산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눈이 녹은 뒤 산사에 올라보니 동자가 얼어 죽어 있었다. 스님은 동자를 양지 바른 곳에 고이 묻어줬는데, 이듬해 동자의 얼굴처럼 둥글고 붉은 꽃이 무덤가에서 피었다고 한다.

이름이 재미난 꽃도 부지기수다. 할미밀망, 사위질빵, 쥐털이슬, 산꿩의다리 등은 듣기만 해도 절로 웃음꽃이 필 것만 같다. 꽃들 사이로 사향제비나비가 사뿐히 내려앉고 벌들이 웅웅거리며 주변을 맴돈다. 헬기장 옆 길가에는 개망초도 자리를 잡았다. 국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는 낯익은 식물이지만 구한말에 도입된 북미 원산의 신귀화식물이다. 원래 이름은 망초인데 ‘개’자가 앞에 붙은 것은 왜일까. 망초는 왜풀, 개망풀 등으로도 불리는데 ‘왜풀’이란 이름은 개망초가 일본을 거쳐 도입됐음을 유추하게 한다.
 

기린초
기린초

◇이무기가 용이 된 전설이 있는 검룡소

두문동재에서 약 1시간30분을 걸으니 평평하고 넓은 분지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분주령이다. 원래 분주령은 정선과 태백 사람들이 만나 분주하게 물건을 교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문동재에서 분주령까지가 평평한 산책길 같았다면 분주령에서 대덕산까지 가는 길에선 다리에 힘이 제법 들어간다. 능선을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드디어 대덕산 정상이다. 바람결에 색색의 야생화가 흔들린다. 대덕산 정상에서 검룡소로 내려가는 길목에도 흑쐐기풀, 짚신나물 등 갖가지 토종 야생화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어느덧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다.

금대봉 산기슭에 자리한 샘인 검룡소는 하루 2천t의 지하수가 석회암반을 뚫고 나와 20여m에 이르는 계단식 폭포를 만드는데 그 물줄기가 용트림을 닮았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의 시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왔는데, 시원이 되는 연못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친 자국이라 한다. 금대봉에는 제당굼샘,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 예터굼에서 물이 솟아나는데 이 물이 다시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검룡소를 통해 분출된다고 한다. 연중 9도를 유지하는 검룡소에서 솟아난 물이 골지천, 조양강, 동강을 지나 단양, 충주, 여주, 양수리, 서울을 지나 서해바다로 들어간다. 총길이 514㎞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 검룡소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0여 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데, 들어가는 길이 완만하고 아름다워 산책하기에도 좋다.

검룡소에 도착하면 야생화 여행이 끝지점까지 온 것이다. 두문동재에서 출발한 지 대략 4시간 30분. 꽃향기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이 끝났다. 길은 끝났지만 아직도 야생화의 향기는 코끝에 묻어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산꿩의 다리
산꿩의 다리

여행팁

금대봉~대덕산 야생화 감상 코스는 둘로 나눌 수 있다. 두문동재~금대봉 구간은 산책 같은 코스로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다. 야생화와 함께 본격 산행을 하고 싶다면 대덕산 코스로 가면 된다. 대략 4~6시간 걸린다. 트레킹을 마친 뒤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대개 검룡소 주차장에 차를 두고 태백지역의 콜택시를 타고 두문동재로 가서 트레킹을 시작하는 게 좋다. 야생화 트레킹로는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관광보존지역이다. 1년에 두 번 출입을 통제한다. 2월 15~5월 15일, 11월 1~12월 15일엔 산길이 폐쇄되니 이 기간은 피해야 한다. 야생화 트레킹을 하려면 국립공원공단 태백산 예약통합시스템에서 미리 예약해야 한다.

/최병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