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은 일 년에 단 하루 있는 어린이 ‘해방의 날’이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공부에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혹사당하고 있는지를 보다 못한 유엔이 나서서 어린이들에게 휴식과 놀이를 권고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지구촌에서 이토록 가혹하게 어린이들을 공부로 닦달하는 두 나라가 있으니, 인도와 한국이다.

교육에 관한 대표 저서로 사람들은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을 꼽는다. 당연한 일이다. 1762년에 출간된 ‘에밀’은 260년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시의성과 설득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에밀’이 출간된 해에 조선의 영조는 27살 먹은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굶겨 죽였다. 문명과 야만의 지극한 대비가 선연하다.

‘에밀’이 출간되기 7년 전인 1755년에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기막힌 통찰을 선보인다. 학문은 무위에서 예술은 사치에서 나왔다고 일갈한 것이다. 그 문장을 읽던 순간 온몸을 관통(貫通)하는 전율에 잠시 눈을 감아야 했다. 농업혁명으로 촉발된 잉여(剩餘) 농산물이 불러온 계급과 문명 그리고 국가의 탄생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화시켰던가!

훗날 출간된 ‘사회계약론’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이론적 기반이 되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유럽 제국주의가 남미의 은을 약탈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유럽의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여 계몽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마침내 산업혁명과 정치혁명까지 일어나 유럽은 그야말로 근대를 일구는 첨병으로 세계사를 쥐락펴락하지 않았던가!

‘에밀’을 읽다 보면 수능시험 하나로 귀결되는 우리의 초중등 교육의 야만적이고 살인적인 경쟁교육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어린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참혹하고 처절한 교육 아닌 교육이 교육의 탈을 쓰고 주인 행세하는 나라! 어린이를 타고난 본성에 따라 교육해야 인간답게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루소가 살아있다면 뭐라 할 것인가?!

노예처럼 공부만 하는 아이는 불행하다고 외치면서 루소는 미래 행복을 위해 시작하는 교육은 야만이라 못 박는다. 대학입시 하나만 보고 초등에서부터 선행학습으로 달려가는 이 나라의 21세기 극성 엄마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하는 18세기 ‘에밀’. 어린이를 천재 혹은 수재로 만들고 싶어 안달 난 숱한 엄마들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루소는 말한다.

“어린 시절 지나친 독서는 아이에게 재앙이다. 호기심으로 글자를 익히게 하고, 아이의 어휘를 아이에게 맞는 수준으로 제한하라. 아이는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사고해야 한다.”

공부 잘하는 자식을 선전하고 과시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힌 엄마의 과욕이 아이를 정신적·육체적 예비 장애인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참혹한 현실! 자기의 말을 노예처럼 순종해야 착하다고 머리 쓰다듬는 엄마는 미래에 자식이 남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루소는 질책한다. 당신이 아이를 위한다는 구실로 강요하는 살인적인 교육을 그만두지 않으면 아이는 평생 고통받을 것이다. 이제는 제발이지 멈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