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늦은 산책을 하는데 손을 꼭 잡은 노부부가 앞서 걸어갔습니다.
한쪽으로 심하게 기운 걸음으로
손에 손을 의지해 중심을 기울이고
한 손에 약봉지를 꽉 그러쥐고
(중략)
마주 잡은 노부부의 손을
섣불리
지나칠 수 없어
더 느린 보폭으로 길의 주름 늘려가는데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좁은 골목이 통째 느려져
다시 출발선에 선 듯 느른하여
뒷모습만으로도
앞모습이 화평하였습니다. (부분)
시인의 눈앞에서 느릿하게 걸어가는 노부부. 자신의 생명줄인 듯 “약봉지를 꽉 그러”쥔 이 노부부는, “중심을 기울”여 서로에게 의지하며 삶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부의 ‘느린 보폭’이 ‘길의 주름’을 더욱 늘려 세계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삶의 황혼에 다다른 노부부가 역설적으로 이 세계를 “다시 출발선에 선 듯 느른”하게 하는 것인데, 이들의 뒷모습은 이 새로운 세계의 화평한 ‘앞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