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범 포항연탄은행 대표.
유호범 포항연탄은행 대표.

올겨울 치솟는 난방비가 화두다. 비용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난방을 덜 가동하고 단열에 안간힘을 쏟는 분위기다. 당장 내 앞의 사정이 급할수록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는 법이다. 코로나에 이은 불황으로 기업의 후원은 줄고, 유례없는 고물가에 개인 기부 활동마저 위축되는 상황. 더 춥고 더 취약한 곳의 사정은 어떨까. 포항연탄은행 유호범 대표는 이 시기를 ‘연탄 춘궁기’, ‘연탄 보릿고개’라고 말한다. 연말 집중되는 나눔의 온기가 식어가며 연탄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때가 요즘이다.

 

포항 연탄 사용 가구 아직도 500곳… 포항연탄은행 한해 10만여장 취약계층에 나눔 봉사
코로나19·고물가 사태로 기업·개인 후원 갈수록 감소 등 2~3월엔 ‘연탄 보릿고개’로 고충
힘듦과 보람 느끼는 나눔의 현장… “어려운 이웃에 힘닿는 날까지 도움의 손길 주고 싶어”

-이 질문부터 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곳이 많나.

△연탄은행 추산으로 전국 8만 가구(2021년 기준) 이상이다. 포항연탄은행을 운영하기 시작한 2014년. 연탄을 사용하는 세대는 800가구로 조사됐고 그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 650가구를 지원했다. 연탄 소비는 차츰 감소하고 있어 현재는 400~500가구로 추산된다.

-연탄을 나눌 가구는 어떻게 선별하나. 세대가 원하는 만큼 지원이 가능한가.

△처음에는 대상자를 정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가가호호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사하다 터득한 비법이 경로당이었다. 어르신들은 도움이 필요한 집과 여유가 있는 세대를 정리해 주었다.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대상자의 건강 상태와 수입 등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겼다. 최하층의 경우 요청이 오는 대로 연탄을 제공한다. 이번 겨울에만 두세 번 지원한 세대도 있다.
 

연탄 배달 봉사에 참여한 학생들.
연탄 배달 봉사에 참여한 학생들.

-포항연탄은행에서 지원하는 수량은 얼마나 되나.

△포항연탄은행은 한 해 평균 10만여 장의 연탄을 나눔 한다. 세대당 한 번에 제공하는 연탄은 300장이니 대략 300가구에 지원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중복되는 가구를 제외하면 200가구 정도 된다. 정부의 에너지바우처 지원사업이 있지만 부족한 실정이다. 날씨가 추워지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연탄으로 난방을 하려면 하루 평균 다섯 장을 기준으로 천여 장이 필요하지만 바우처로 구매할 수 있는 연탄은 절반에 불과하다. 복지제도는 좋아졌지만 신고제가 문제다. 방법을 몰라 혜택을 못 받는 고령층도 있다.

-연탄을 때는 가구의 생활 정도는 어떤가.

△고령층 그 가운데 독거노인이 다수다. 젊은 층은 어려워도 연탄을 안 땐다. 때맞춰 연탄 갈기가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인성 질환에다 막노동이나 농사일로 관절이 망가져 거동이 불편하고 일할 능력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연탄 나눔을 시작하던 무렵에는 송도동, 청림동, 용흥동 거주자가 많았다면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최근엔 흥해읍 거주자가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연탄 때는 가구가 줄어드는 건 좋은 일 아닌가.

△정부는 연탄사용 가구의 보일러 교체를 지원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서 저소득층의 생활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매년 연탄을 지원받던 세대가 올해는 연락이 없길래 전화를 걸어봤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가스보일러를 들였다며 하는 말이, 집 안이 추워서 생활이 어렵다고 한탄을 하더라. 가스나 기름보일러는 때면 땔수록 돈이 들지만, 연탄은 꺼트릴수록 돈이 든다. 연탄 갈기가 수고스럽지만 다른 에너지에 비해 확실히 저렴하다. 연탄 때는 집에 가보면 훈기가 감돌지만, 가스나 기름 때는 집은 그야말로 썰렁하다. 전기장판에 두터운 이불을 늘상 깔아놓아도 냉골이다. 기름 겸용 보일러가 있어도 연탄을 사용하는 어르신이 많다. 가난한 이들이 겨울을 그나마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연료는 연탄이 유일하다.

-기부와 후원이 감소하고 단체 봉사가 불가능했던 코로나 시기는 어떻게 견뎠나.

△연탄 나눔은 순수 후원에 의존한다. 매해 15만 장씩 하던 나눔이 코로나 첫해에는 3분의 1로 감소했다. 후원을 약속했던 기업과 단체들이 줄줄이 취소했다. 하는 수없이 긴급으로 필요한 곳에만 연탄을 제공했다. 연탄을 날라줄 봉사자가 없으니 배달료 부담도 문제였다. 코로나 기간 내내 틈날 때마다 마스크와 소독제를 들고 어르신들을 방문했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우려와 불안으로 거의 감금되다시피 생활하던 상황이라 눈물까지 흘리시더라. 지금은 폐차된 경차를 끌고 안 다닌 데가 없다. 다행히 지난해 말부터 후원과 봉사가 늘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의 활기는 아직이다.
 

-연탄 나눔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예닐곱 살 무렵, 고향인 경기도 양평에서 서울로 이사를 갔다. 어머니는 행상을 다녔고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이삿짐을 수시로 쌌을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연탄은행을 만든 허기복 대표가 청년 시절에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였다. IMF가 터지고 원주에서 무료급식을 하다 연탄은행을 설립한 분이다. 허기복 대표의 권유로 김천에서 연탄은행을 시작했고 영주와 포항까지 이어졌다.
 

연탄 배달 봉사에 참여한 학생들.

-난방비 대란이라는 요즘 에너지 취약계층의 상황은.

△이곳이 연탄은행이기는 하지만, 가장 취약한 에너지 빈곤층은 기름보일러를 때는 세입자이다. 기름값 부담에 맘 놓고 쓸 수도 없고 거기다 보일러 수리나 교체는 엄두도 못 낸다. 그러므로 연탄은 에너지 취약계층의 상징어로 보면 된다. 기부자가 대상과 방식을 지정하는 것을 ‘지정기탁’이라고 하는데, 연탄은행 후원자의 90%가 연탄을 지정한다. 후원자들에게 난방용 등유로 변경해도 괜찮으냐고 양해를 구하기도 하는 이유다. 난방은 주거 환경이나 건강과 연계된 문제이다. 단순히 연탄 지원에 그치지 않고 수명이 다 된 연탄보일러를 교체하는 시설 개선 사업을 동반한다. 혹한기에는 방한복과 이불을, 혹서기에는 선풍기와 생수 등의 생필품 나눔도 4~5년 전부터 하고 있다. 에너지 취약층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에너지은행 사회적협동조합’을 구성해 나눔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입춘이 지난 요즘 시기에 나눔이 더 절실하다고.

△연탄 나눔은 연말에 집중된다. 소외이웃에 온정을 나누는 연말연시 분위기 덕이다. 보통 한 집에 300장씩 배달하면 한 달 반 정도 사용하니, 2~3월이면 연탄이 바닥나게 된다. ‘이월에 보리 꾸러 갔다가 얼어 죽는다’고 하지 않나. 연탄은 떨어지고 늦추위는 가시질 않아 보릿고개처럼 힘들다고 ‘연탄 춘궁기’라는 말이 있다. 연말에 찾아오는 봉사자들에게 2~3월에 꼭 한 번 더 와달라고 부탁을 드린다.

-힘듦과 보람이 공존하는 나눔의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후원자가 있다면.

△어느 해인가, 크리스마스 전날에 젊은 부부가 찾아왔다. 매일 천원씩 모았다며 36만5천원을 후원했고 이후로도 거의 매년 찾아온다. 처음에는 둘이서 나중에는 아이와 셋이서 말이다. 남을 돕는 나눔은 자신을 충만하게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예상외로 가까이 있음을 깨달았다거나 부족함 없는 생활을 불평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현장이다 보니 간혹 기념촬영에만 집중하는 후원자나 도움을 당연시하는 수혜자도 있는데 정중하게 말씀을 드리는 편이다.

-연탄은행을 운영하며 바라는 바가 있다면.

△연탄 나눔에도 쏠림 현상이 있다. 시기적으로는 연말에 몰리고 지역적으로도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포항의 경우 기업 후원은 철강공단이 위치한 남구에 집중된다. 골고루 분배되면 더불어 따뜻한 겨울나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연탄은행은 제도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공적 지원은 기초생활수급이니 차상위라느니 조건이 필요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사정이 더 딱한 경우가 많다. 시청에서 연탄은행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낡은 조립식 패널 집에 거주하던 출소자였다. 구멍 뚫린 벽 사이로 찬바람이 드나들었지만 연탄난로 하나가 전부였다. 우리가 연탄보일러를 설치하고 패널을 구입해 직접 덧대주었다.

-포항연탄은행이 운영된 지 9년이 됐다.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하다.

△연탄 지원을 경주 지역까지 확대하고 있다. 도움의 손길을 힘닿는 대로 뻗고 싶다. 뜻있는 분들과 얘기하고 있는 부분은 ‘연대’이다. 연탄은행은 에너지, 의료 봉사 단체는 건강, 이런 식으로 다양한 분야가 연대하면 체계적 지원이 가능하다. 또 하나는 나눔의 자력(自力)이다. 지난 2002년 원주에서 시작된 연탄은행은 전국협의회로 운영된다. 포항에서 사용되는 사업비 가운데 포항에서 충당되는 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전국협의회에서 도움을 받는다. 지역의 에너지 빈곤층을 지역민의 힘으로 도울 수 있는 자력이 생겼으면 한다. 나눔은 불평등을 극복하는 힘이라고 하지 않나.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둔덕이 조금이라도 더 평평해진다면 지금보다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유호범 포항연탄은행 대표는

김천에서 목회를 하면서 연탄은행 운영을 시작했다. 포항은 산업도시라 형편이 나을 것 같았지만 그늘은 더 짙었다. 죽천리 바다 마을에 연탄 나눔을 위한 그루터기 교회를 개척하고 전국 31번째 연탄은행을 포항에 설립했다. 일요일 오후 예배는 연탄 배달 봉사로 대신한다. 정치성과 종교성을 띠지 않아야 한다는 비영리 민간단체의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포항연탄은행을 한동대학교 인근으로 옮겼다. 연탄은행의 상징 무늬에는 쌀알과 연탄이 밥그릇에 담겨있다. 연탄은행의 정식명칭은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이고 슬로건은 ‘등 따시고 배부르게’. 에너지 빈곤층을 더 깊고 넓게 돕기 위해 ‘에너지은행 사회적협동조합 포항지부’를 조직하고 인근 도시로 나눔을 확장 중이다.

/배은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