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숲과 반짝이는 별빛, 자연생태계 보고 경북 영양

영양 수비면 자작나무숲

오지(奧地)는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 내부의 땅’을 말한다. 흔히 첩첩산중의 두메산골을 이를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는 오지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작나무와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온전하게 쉬고 싶다면 죽파리 자작나무 숲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1993년 죽파리 검마산 일대 식재한 나무들
평균 높이 20m 울창한 숲 이뤄 여행객 입소문
아시아 첫 ‘국제밤하늘보호공원’ 수비면 일대
‘하늘에서 별이 얼굴로 쏟아진다’는 말 실감나

◇ 하얀 자작나무의 황홀한 수피

자연 속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멀고 험하다. 영양에서 울진 평해로 이어지는 국도를 타고 가다 면 소재지인 발리리에서 또 한참을 가야 겨우 죽파리에 닿는다. 여기에서 영양 자작나무 숲 입구까지 약 3.2㎞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원래는 차량이 통행할 수 있지만 산림 보호 차원에서 지난해 여름부터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영양 자작나무 숲은 산책로 초입에서 숲 입구까지 이르는 과정이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작나무 숲이 있는 검마산 자락은 자연 생태계의 보고다. 지루할 것만 같던 산길은 초입에 들어서면서부터 청정 자연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다람쥐와 산토끼,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고, 수령이 족히 100년은 넘을 것 같은 금강송 등 아름드리나무가 곳곳에 널려 있다. 그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걷는 내내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을 만큼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청량한 숲길을 한참 걷다 보면 어느 지점부터 휴대폰 전파마저 끊긴다.

그렇게 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걷다 보면 영양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 사실 이곳은 사람이 만든 인공 숲이다. 산림청이 1993년 죽파리 검마산 일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지금은 높이가 평균 20m에 달하는 자작나무 수만 그루가 30만6천㎡의 숲을 가득 메우고 있다. 국내 자작나무 숲을 대표하는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의 세 배에 달한다고 하니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동안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다가 인근 검마산 자연휴양림을 찾은 여행객들을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영양수비별빛캠핑장
영양수비별빛캠핑장

◇ 자작~ 자작~ 하얀 숲의 속삭임 들어봐요

자작나무는 줄기의 껍질이 하얗게 벗겨지고 얇아서 고급 명함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자작나무 껍질이 떨어지면 연인들이 사랑의 글귀를 남기고 걸어두기도 하는 낭만적인 나무라고 한다. 자작나무는 실용성도 뛰어나다. 널리 알려진 껌, 치약의 재료인 자일리톨도 자작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것이다. 북유럽에서는 자작나무를 이용한 가구를 최고로 친다. 껍질에 기름기가 많아서 밀초로도 쓰인다. 결혼식을 올렸다는 말을 ‘화촉(華燭)을 밝혔다’고 하는데 여기서 쓰이는 화촉이 바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밀초다. 잘 썩지 않아 신라시대 고분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과 머리 위를 뒤덮은 초록 잎 사이로 아담한 오솔길이 열렸다. 오솔길은 약 2㎞ 펼쳐지는데 검마산 정상 부근까지 연결된다. 산등성이 위로 스러져가는 햇볕 사이로 빛나는 하얀 자작나무의 모습은 황홀하다. 숲을 걷다 보면 지저귀는 새소리, 부서지는 햇살, 자작나무의 연초록 잎과 하얀 수피가 어우러진 장면이 비현실적인 감동을 준다.

너럭바위를 기점으로 길이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가거나 임도를 따라 정상 자락에 있는 자연휴양림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도 아니면 자작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느끼며 숲에서 쉬어가도 좋다.

 

원대리 자작나무숲
원대리 자작나무숲

◇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부신 별

수비면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이 하나둘씩 불을 켜기 시작했다. ‘야외 조명의 빛 공해에서 어두운 밤하늘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든 미국 비영리단체 국제밤하늘협회(IDA)는 2015년 10월 수비면 반딧불이 생태공원 일대(3.9㎢)를 아시아 최초의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했다.

이곳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에서 별이 얼굴로 쏟아진다’는 말이 실감 난다. 외국의 사막에서 본 것 같은 무수한 별이 밤하늘에 펼쳐져 빛도 없는 깊은 산골짝을 은은하게 밝힌다. IDA의 슬로건처럼 ‘불을 끄고, 별을 켜자’라는 말이 딱 맞는 곳이다.

별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근처의 영양반딧불이 천문대에 들러보자. 주간에는 태양의 흑점과 홍염을, 야간에는 은하와 달을 제대로 관측할 수 있다. 인공의 빛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곳은 일찌감치 반딧불이 보존구역으로 지정됐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맹그로브숲이나 필리핀 레가스피 등에서 봤던 것처럼 반딧불이의 장관이 펼쳐지지는 않지만 어두운 숲속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녹색의 광채는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양평 서후리숲
양평 서후리숲

자작나무 명소 2선

영양 자작나무 숲 외에도 전국에는 매혹적인 자작나무 숲이 여러 군데 있다. 그중 세상에 잘 알려진 곳은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BTS가 애정하는 양평 서후리 자작나무 숲이다.

△ 치유와 휴양을 겸한 원대리 자작나무숲

햇살을 받은 자작나무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는 물고기처럼 퍼덕거린다. 강원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에 있는 자작나무숲은 25만㎡에 70여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이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솔잎혹파리 피해를 입은 소나무 숲을 벌채한 뒤 1989년부터 8년간 조림한 결과다. 2012년 8월 인제국유림관리소가 자작나무 숲을 산림문화·휴양 공간으로 개방한 뒤 방문객이 꾸준히 늘어났다.

자작나무 숲 탐방로는 4개의 탐방 코스로 구성됐다. 1코스(0.9㎞)에선 순백의 자작나무 정취를, ‘치유코스’라 불리는 2코스(1.5㎞)에선 여러 종류의 나무가 어우러진 혼합림과 천연림을 만날 수 있다. 3코스(숲길 1.1㎞·원대임도 2.7㎞)는 작은 계곡을 따라가는 코스이며, 4코스(숲길 2.4㎞·절골임도 2㎞)에선 원대봉 능선을 따라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다. 인제국유림관리소는 봄철 산불 방지를 위해 3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입산을 통제하므로 방문을 원한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다.

△ 호젓한 명품 자작나무 숲길 서후리숲

양평의 옥산(578m)과 말머리봉(500m)에 감싸 안긴 서후리숲은 경기도에서 드물게 자작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사유림 33㏊(약 10만 평)를 숲으로 꾸며 2014년부터 개방했다. BTS가 2019년 달력 사진을 찍으면서 더욱 유명하며 잔디밭, 원형 테이블, 자작나무숲 등 BTS가 화보를 찍은 지점에 사진을 전시해 팬들이 인증 샷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는 좁은 길을 한참 따라간 후에야 서후리숲 입구가 나타난다. 숲 탐방로는 두 개의 코스로 자작나무숲에 가려면 A코스를, 시간이 부족하거나 노약자가 있다면 B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계곡 옆길을 따라가는 A코스는 제법 경사가 있어 1시간 동안 등산하는 맛이 나고, 침엽수림 중심의 B코스는 30여 분간 호젓한 산책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어느 코스든 모든 길이 일방통행이어서 다른 이들과 마주칠 일이 적으니 고요한 숲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다.

서후리숲에는 자작나무, 메타세쿼이아, 단풍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권역별로 자란다. 그중 제일은 숲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자작나무숲. 새하얀 수피를 두른 자작나무가 끝없이 펼쳐진 풍광은 감탄의 연속이다. 하얀 나무 기둥을 타고 내려온 햇볕이 싸라기눈처럼 반짝인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마다 하얀 벤치를 둬 그림 같은 자연을 즐기게 한 덕에 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목~월요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화~수요일은 쉰다.

/최병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