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애

복면의 사내

외줄 그네를 타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밀대를 밀며 간다

백색 점프다

줄을 당기고 늦추며

포름알데히드가 휘발중인 흰 사슴이 뛴다

늙고 병든 비둘기가 추락하던 난간

벌거벗고 시위하던 사내

구급대원들이 산벚나무 두 그루 밑동까지 잘라

공기 매트를 깔아주던 실패한 자살자가 사는 12층도 새하얗다.

빛바랜 잡초도 흰 귀를 달고

허름한 아파트는 사라졌다

소문은 표백되고 (부분)

‘도장공사’는 우리의 일그러진 일상에 가면을 씌운다. 가령 “벌거벗고 시위하던 사내”가 자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살아가는 ‘12층’을 ‘새하얗’게 변모시킨다. 일상의 본 모습에는, 난간에서 추락하는 “늙고 병든 비둘기”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추락이나 병의 고통 같은 죽음의 그림자가 검게 드리워져 있다. 하나 ‘백색 점프’를 통해 “허름한 아파트는 사라”지고 불길한 “소문은 표백”되는 것이 작금의 세상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