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한 남자가 산에서 떨어져 죽는다. 형사(해준)는 살인인가 자살인가의 의문에서 출발해 증거를 수집한다. 죽은 남자의 부인인 서래는 용의자와 피의자 사이를 오가며 의심과 신문(訊問)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나간다. 형사와 용의자는 신문(訊問)과 증명(알리바이)을 주고 받으며 혐의를 입증할 것인가 벗어날 것인가의 추리 수사물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진다.

남여가 만난다. 호감을 가지고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애쓴다. 대화하고 관찰하고 모든 행동과 대화를 되새기면서 어떤 의도로 그렇게 말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조심스럽게 타진해 나간다. 사소한 행동, 사소한 말 한마디조차 의미를 부여하며 내 마음을 들키지 않고서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분주히, 그 과정이 애틋하다. 로맨스 영화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진다.

서로 다를 것 같은 장르가 한 편의 영화에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어우러지고 있다. 저 사람은 ‘범인인가 아닌가’가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닌가’가 같은 선상에 놓인다. 수사는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고, 신문의 과정은 타인과 나를 동일한 감정 선상에 놓이게 한다. 혐의를 입증해야하는 과정은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

수사가 끊임없는 의심과 증명의 과정을 밟을 때, 사랑은 관심과 마음의 표현이라는 과정을 따른다. 그래서 ‘저사람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인가?’는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범죄와 사랑의 증명을 위해 증거(관심)를 수집하고 확인해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수사극으로 시작한 영화는 멜로영화가 되고, 멜로가 시작될 때 다시 수사극으로 중첩되어 전환된다.

수사가 유죄와 무죄의 두 가지 결말에 따라 자유와 구속을 길을 걸을 때, 멜로가 만남과 이별이라는 결이 다른 자유와 구속(?)의 길을 걷는다. 등치되고 상반된다. 설렘과 의심 사이 ‘자부심’과 ‘붕괴’가 교차된다. 범인인가 아닌가와 사랑했는가 아닌가가 교차되며 오간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는 서래의 대사처럼 용의자와 형사로 만난 두 사람은 모호함을 오간다.

산에서 시작된 영화는 바다에서 끝난다. 만남과 이별이 이어지듯이 용의자와 피의자의 관계가 시소를 탄다. 명확해지던 정황은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자부심’과 ‘붕괴’를 오간다. 안개 속 같은 모호함 속에서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 영화 제목인 ‘헤어질 결심’이 누구와 헤어질 것이며, 어디로 향해 갈 것인가다. 헤어진다는 것, 이별을 한다는 것은 대상과 지향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산에서 시작된 영화 전반부의 ‘헤어질 결심’이 형사 해준에게로 향하는 마음의 결심이었을 때 바다에서 이어지는 후반부는 의심하는 사랑에 대한 단호한 응징과도 같은 확신을 보여준다. 이것이 서래의 ‘헤어질 결심’이다. 반면에 해준은 ‘자부심’과 ‘붕괴’ 사이에서 의심과 그것을 증명할 무엇인가를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존재로 남는다.

의심하고, 미행하고, 감시하고, 구속하는 것의 구조는 수사와 사랑이 유사하다. 그러나 미결된 사건처럼 확인되지 않고 결말에 다다르지 못한 사랑은 역설적이게도 영원히 사랑으로 남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붕괴’를 막고 ‘자부심’을 지켜주기 위한 최선의 방법,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최선의 선택이 희생이라는 역설에 있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해준의 말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과 똑같다. 사랑과 붕괴가 동의어가 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사랑이 되고, 평생 잊혀지지 않을 미결사건이 되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엔딩에 이르러 ‘붕괴’된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한 여자가 ‘마침내’ 사랑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순간.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여운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번져옴을 느낀다. 오래 갈 것 같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