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학

백 년을 넘긴 대추나무가

서쪽으로 기우는 달밤입니다

수평으로 퍼지다 직각으로 올라간

얼마 되지 않은 대추나무가지에도

이른 메밀꽃처럼 꽃이 핀 달밤입니다

훤히 뚫린 개집 안 더 아픈 강아지가

끈질기게 앓는 강아지의 등에 바짝 붙어

흰털을 핥으며 실눈을 빗뜨는 달밤입니다

만물이 상생하면서 이루어지는 우주 생명의 경이가 선명하고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는 시. 특히 강아지의 따스한 애린을 보여주는 행동은 어떤 인간 모습보다도 감동적이다. 꽃이 피어날 장소를 제공하는 대추나무도 타자에 대한 애린을 보여준다. 달빛은 세계 내 존재자들이 보여주는 애린의 세계를 감싼다. 그 달빛이 퍼져 나가는 달밤은 경이로운 생명의 세계가 자신을 은은하게 드러내고 있는 우주적 공간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