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태수필가
조현태 수필가

소리 즉 진동을 공기 중에서 감지하는 방법은 귀의 고막을 통해 파악한다. 마찬가지로 물속에서 발생한 소리도 진동(파장)으로 감지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따라서 물고기도 귀가 있는 것처럼 소리를 감지한다고 한다.

물고기는 귀가 없어도 소리를 감지한다는데 어떤 형태로든 물에 의해 전달되는 파장을 알아차리는 기관이 발달해 있을 것이다. 더구나 물속에서의 진동은 공기 중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전달된다니 놀랍다.

한편 공기로 호흡하는 사람이나 짐승들은 공기 중에서 전달되는 소리를 귀로 듣는다. ‘귀’라는 기관은 너무 먼 곳에서 발생한 소리는 잘 듣지 못한다. 만약에 매우 미세한 소리나 아주 먼 곳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대단히 불편할지도 모른다. 얼마나 시끄럽고 온갖 소리가 겹쳐서 분간하기 어려울까 싶다.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도 역시 자연 속에 살아가는 가장 적절한 삶의 감각기관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지구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의 삶에 가장 적절한 감각기관을 운용하며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종이 다른 동물 사이에는 색다른 차이가 있겠지만 같은 종에서도 각각에 따라 반드시 차이가 있을 터이다. 그것을 다른 표현으로 개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

각자 살기에 편리하도록 기관과 감각이 발달해 있다. 사람에게로 개성을 살펴보자.

어느 날 어느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때 필자는 BBC earth 채널 방송을 보고 있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말은 대부분 일상적인 수다였고 끝도 없이 주절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그리 중요하다고 여기지도 않았고 크게 관심이 가지도 않았다. 왜냐면 지구 환경에 관한 방송에 집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질문을 했으면 대답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무슨 질문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내 말에 쨍그랑 접시 깨지는 소리를 했다. 여태껏 전화로 한 말은 안 듣고 뭐하느냐고 대거리를 했다. 나는 대단히 머쓱해졌다. 미안한 마음으로 BBC 방송에 정신이 팔려 잘 못 들었다고 사과했더니 발칵 화를 냈다. 어찌하여 친구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돈단무심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성의가 없다는 둥, 관심도 없다는 둥, 여자 친구를 무시한다는 둥. 처음에는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으나 금세 진실로 화가 났구나 싶었다. 덩달아 나도 같이 화난 소리를 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면 넘어가도 될 일이지 무슨 까닭으로 전화에 대고 이토록 호통을 치느냐고 했다.

내가 관심 깊은 방송을 보는 중에 전화가 왔고 30분씩이나 조잘대고 있으니 건성으로 들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냐고. 자기 전화에 남의 관심사를 묻어버리려는 태도는 더 나쁘지 않느냐고 했다. 각자 삶의 방향이 다를 때 관심이나 감각도 자기를 중심으로 발달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성도 없지 싶다. 그래야 진화도 있을 터이다.

대체적으로 이렇게 각자의 상황이 상대에게도 적합한 줄로 오해하는 것에서 잡음이 생기고 다툼으로 번지며 심하면 싸움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