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경수필가
배문경 수필가

천년의 미소라고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를 본다. 천 년 전의 미소가 저랬을까. 넉넉하고 평화롭다. 일부분이 달아나고 없어도 미소는 온화한 할머니 같다.

지난 7일은 세계 미소의 날이었다.

‘세계 미소의 날’은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과 사람들이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의와 친절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도록 하자는 뜻에서 제정되었다. 매년 10월 첫 번 째 금요일이다.

재즈보컬가수 넷킹콜의 ‘Smile’을 카카오 톡으로 지인에게 아침인사로 보냈다. 몇 해 전 아카데미주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Joker)’ 예고편에 사용된 곡이다. 그러고 보니 이모티콘에 다양한 미소가 있다. 하나 혹은 두세 개를 인사말과 함께 보냈다. 우리 일상이 미소로 시작된다면 좋지 않을까싶은 마음에서였다.

어느 순간 자고 일어나면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로봇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휴대폰 알람소리에 일어나 씻고 거울을 보고 다듬고 옷을 입고 출근하는 일이 그렇다. 그래서 사는 일이 지겹고 행복하지 않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매일 매일, 일상의 지겨움에 지칠 때 즈음해서 주말이 있고 명절이 있고 국공일이 있다. 미소 짓는 날이라고 하니 웃음이라도 한 번 날려본다. 실없다싶어도 세상은 나비효과라는 것도 있으니 하루가 즐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리어카에 뻥튀기를 담아서 끌고 다니며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 리어카의 전부를 팔아도 삼사만원이 될 듯 말 듯 했다. 간호사회에서 나오는 연말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나의 얼굴을 쳐다보던 할머니는 “나는 이렇게 살아도 자식들이 객지에서 먹고 살만하고 집에서 무료하게 있기 싫어서 리어카를 끌고 나온 사람이다. 날 도와주기 보다는 다른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고 얘기했다. 치아가 다 썩어 내려앉아 앞니가 몇 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큰돈은 아니지만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극구 사양하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서서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민망함을 느꼈다.

가끔 주머니에 있는 몇 천원으로 뻥튀기를 사드리곤 했는데 그 후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실수가 아니었나 싶다. 리어카에 뻥튀기를 파는 그분이 나보다 마음부자였다. 미소부자였다. 뻥튀기를 살 때 그분의 행복도 함께 샀어야했는데 어설픈 눈으로 내가 더 미소가 많다고 착각했다. 뵐 때마다 웃으며 담소라도 나눴더라면, 하시는 일이 값진 일이라 여겼다면 발길이 이어졌을텐데 후회가 밀려온다.

‘세계 미소의 날’을 제안한 인물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마일 아이콘을 고안한 미국의 디자이너 하비 볼(Harvey Ball)이다.

그는 그가 1963년 고안한 스마일 아이콘의 본질적인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는 기념일을 만들어 진정한 미소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비 볼의 고향 우스터에서 매년 세계 미소의 날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기념행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간의 웃는 얼굴 풍선, 길바닥 그림, 아카펠라 콘서트, 서커스 공연, 파이 먹기 대회 등이 펼쳐진다.

하지만 세계 미소의 날이 있는지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많으리라. 아직 코로나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하다보면 상대로 저절로 웃음을 띠게 된다. 리어카를 끌며 뻥튀기를 팔던 할머니도 리어카에 폐휴지를 담아 끌고 가시는 노인도 오늘 하루는 편안했으면 좋겠다. 노을 지는 하늘 보며 편안하게 허리를 펴며, 살아있어 행복하다고 주름진 얼굴에 웃음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 날 이후 서툰 동정을 보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만날 때마다 미소를 짓지 못하고 깊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가난에 대한 무시는 혹여 없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할머니는 어쩌면 미소가 가난한 나를 동정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행동을 반성하며 모나리자의 은은한 미소나 염화미소를 떠올리며 연습했다. 간혹 사진을 찍을 때처럼 ‘스마일, 치즈, 김치’를 반복했다.

덕택일까. 방송에서 세계 미소의 날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