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태 수필가
조현태 수필가

필자 카톡에 올라온 아름다운 글이 있다. 좀 더 널리 공개하고픈 욕심이 발동한다. 지금 그 내용을 지면에 소개하려 한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컴퓨터를 판매하고 있는 사장님이 경험한 이야기다.

며칠 전 사장님이 어떤 아주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서울에서 할머니 보호를 받으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단다. 전화를 건 아주머니는 지방에서 따로 생활하는 중이지만 어린 딸에게 중고 컴퓨터라도 구입해 주고 싶어서 전화했단다. 열흘쯤 지나서 쓸 만한 컴퓨터가 나타났다.

아이가 할머니와 살고 있다는 서울 주소로 컴퓨터를 싣고 갔다. 다세대 건물 단칸방에 부업 일거리를 잔뜩 쌓아놓은 걸로 봐서 구차한 형편인가 보았다. 컴퓨터를 조립하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보고 환호하며 춤추듯 좋아했다. 할머니는 손녀 어깨를 토닥이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네 엄마가 사 준 컴퓨터라고 설명했다.

사장님이 설치를 마치고 큰길에 나오니 정류소에 그 아이가 학원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슴없이 학원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고 학원 방향으로 십분 쯤 갔을 때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화장실이 있을 법한 가게 앞에 차를 세워주자 사장님더러 그냥 가라면서 황급히 건물 안으로 뛰어갔다. 무심코 아이가 앉았던 자리를 보는 순간 검붉은 핏자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첫 생리인 듯했다. 아마 속옷과 바지까지 버렸을 것이다. 당황하며 급하게 뛰어내린 아이 얼굴이 겹쳤다. 당장 화장실에 혼자 가서 어떻게 할까. 아이가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첫 생리를 엄마 없이 겪어야 하는 아이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사장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울상 짓고 있을 아이가 떠올라 마음이 급해졌다. 속옷과 생리대라도 구입하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다녔으나 사장님이 해결할 사안이 아니었다. 바로 아내에게 전화했다. 즉시 택시 타고 오면서 전화하라고 일렀다. 아내는 위급한 상황을 짐작하고 택시 안에서 사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어떤 물품들을 구해야 하는지 남편에게 차분하게 지휘했다.

드디어 도착한 아내가 남편이 구입한 물품들을 가지고 그 화장실로 갔다. 잠겨있는 화장실 앞에서 “얘야 컴퓨터 아저씨네 아줌마다. 안에 있니?” 울먹이며 겨우 대답하는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가 잘 처리해주었다. 평범한 가정이라면 축하와 함께 조촐한 파티라도 벌였을 터인데 낯선 화장실에서 혼자 얼마나 곤란하고 무서웠을까 콧날이 시큰해진다.

다시 남편에게 꽃도 한 다발 사라고 전화한다. 눈이 부어서 머쓱해있는 아이에게 꽃다발을 안겨 보내고 돌아오다가 아내가 말했다. 컴퓨터 값 22만원을 되돌려주고 싶지만 중고 컴퓨터 값이 내렸다고 둘러대고 10만원이라도 할머니께 갖다 주자는 통 큰 제안을 했다. 그날 밤 늦은 시각에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고 컴퓨터 구입한…”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매여 울먹이는 소리만 들렸다. 사장님도 아내도 아무 말 못하고 충혈된 눈에서 따뜻하고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정치는 썩어도 우리 사회가 아직은 괜찮다는 카톡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