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다는 착각’
질리언 테트 지음
어크로스 펴냄·인문

이제껏 우리가 세상의 변화를 읽고 탐색하는데 사용한 도구들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경제 전망은 수시로 빗나가고, 선거에서는 엉뚱한 결과가 나오고, 금융 모형이 실패하고, 기술 혁신이 위험 요인으로 돌변하고, 소비자 조사는 현실을 호도하는 현상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 것일까? 마크 트웨인의 경구처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파이낸셜 타임스’ 편집국장이자 인류학 박사인 질리언 테트는 저서 ‘알고 있다는 착각’(어크로스)에서 기존의 사회 분석 도구들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복합적인 원인들을 포착할 수 없다고 말하며, 세상 속 진짜 문제를 읽어내기 위한 도구로 인류학을 제시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인류학은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이면에 감춰진 무언가를 포착하고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고 문제를 새롭게 통찰하는 학문”이라며 “오늘의 세계에 (인류학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렌즈가 더럽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든 사회과학자든, 타인을 연구해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문화적 환경의 산물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게으르게 짐작하고 편견에 휩쓸리기 쉽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사는 방식을 ‘정상’으로 여기고 다른 방식은 모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고 모든 방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질리언 테트는 중국 속담 “물고기는 물을 볼 수 없다”를 빌려와 ‘어항’ 밖으로 뛰어내릴 때 비로소 우리가 속한 문화에서 ‘당연해 보이는 것들’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평가하고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 문화를 수용하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맥락과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을 때 그 사회에 맞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대표 사례로 소개하며 ‘혁신적 금융 상품’, ‘파괴적 금융 공학’과 같은 용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리스크가 어떻게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졌는지를 이야기한다.

만약 이 사태를 금융 엘리트의 눈이 아닌 인류학자의 렌즈로 바라봤다면 그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리스크와 금융계 내부 모순을 사전에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 밖에도 애완동물과 소비자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해 사료 업계에서 반전을 일으킨 소비재 기업 마스의 사례, 에볼라부터 코로나19까지 세계 각지를 휩쓸고 간 전염병 대응 사례를 통해 빅데이터나 통계만으로 놓치기 쉬운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인류학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우리는 소음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인류학의 힘은 우리가 사회과학에 귀 기울이고, 무엇보다도 숨겨진 무언가를 보게 해준다는 점에 있다. 사회과학에 귀를 기울이면 내부인이자 외부인이 되기 위한 민족지학 도구를 수용하고 아비투스와 상호관계, 센스메이킹, 주변 시야와 같은 개념을 차용할 수 있다.

질리언 테트는 책 후반부 월스트리트와 워싱턴과 실리콘밸리에서 인류학이 어떻게 사회적 침묵을 밝혀냈는지 이야기하며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방법을 소개한다.

이런 분석의 틀을 도입해 정치와 경제, 기술을 다른 렌즈로 들여다볼 수 있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세상의 침묵을 경청할 수 있는 힘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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