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서울, 그것도 강남이 물난리를 겪었다. 하루 반나절 쏟아부은 빗줄기에 모든 게 속절없이 떠내려갔다. 자연의 힘이 센 줄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렇듯 맥없이 당하는 처지는 어처구니가 없다.

홍수뿐일까. 수확기의 가뭄, 한겨울의 한파, 때를 가리지 않는 지진. 우뚝 선 빌딩 숲과 온갖 화려한 문명의 산물들을 자랑하지만, 자연이 인간에게 부리는 심술 앞에 언제까지 이렇듯 힘없이 스러지기만 하는지. 대한민국 서울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산불과 지진, 토네이도와 폭염, 한파와 전염병에 도무지 무기력하기는 매한가지다. 전쟁과 폭력 등 인간의 악행이 초래하는 어려움보다 자연이 던지는 위협 앞에 인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빌게이츠(Bill Gates)가 우리 국회에서 연설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습격을 수년전에 예견하였다는 그는, ‘다른 나라들이 미래를 바꾸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고 했다.

갈등과 다툼으로 뒤범벅이 된 이 나라에 와서 저런 말을 한 사람은 그뿐이 아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1929년에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 부르며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고 했다. 타고르나 게이츠가 생각없이 남의 나라를 치켜세웠을까. 상대를 높이기 위한 예의가 작용했겠지만, 언론에 기고하고 국회연설을 하며 던진 생각에는 진심이 실었을 터이다.

오늘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대한민국은 다른나라들의 기다림에 답해야 하고 동방의 등불 역할을 해내야 한다. 해묵은 악다구니 속에서도 젊은 정치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찾는 몸부림이 있다. 잘못 짚는 국가리더십을 팽팽하게 견제하는 목소리도 있다. 도전과 저항이 느껴지는 논란과 갈등도 엿보인다.

국가공동체의 역동성은 한 방향으로만 모이는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아니다. 나라와 국민이 가진 수다한 문제들 앞에 생각과 의견을 민주적으로 모으는 겸허함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의 역동성을 적절하고 조화롭게 버무리고 수렴하여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게 국가의 역할이 아닌가. 국민의 손으로 선출해 맡긴 정부의 역할은 한반도를 너머 세계가 주시한다. 기대에 못 미치는 대통령을 평화적으로 바꾸어 본 국민의 눈길도 날카롭다.

새 정부가 잘했으면 좋겠다. 나라와 국민에게 가능성과 역량이 있음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 내일을 열어갔으면 한다.

지난 수십년간 국민이 더러 이용당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만큼 겪었으면 보수와 진보 따위로 헷갈리지도 않는다. 낡은 진영논리로 국민을 현혹하지 말아야 한다. 보다 분명한 변화와 혁신을 위하여 의미있게 바꾸어가는 대한민국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허무맹랑한 말싸움터를 이제는 건강한 토론의 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세상은,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대한민국에서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