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본사’

이희수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인문

오늘날 ‘역사’라는 개념을 관성적으로 구분하면 누구나 자연스레 ‘서양사’와 ‘동양사’로 나눈다. ‘서양사’는 그리스-로마에서 출발해 중세-대항해시대-르네상스-종교개혁을 거쳐 산업혁명과 근대 문명으로 귀결되면서 ‘세계사(世界史)’라는 이름을 독점했고, 동서양의 균형을 내세우며 인위적으로 육성된 ‘동양사’는 중국사 일변도였다.

나머지 세상은 지역사, 변방사, 비주류 역사로 치부됐으며, 서양사와 동양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엄격히 분리된 채 이어져 오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서양이 동양을 개화시키며’ 융합됐다는 식으로 말해져 왔다.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에 관한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이희수(69)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신간 ‘인류 본사’(휴머니스트)에서 이는 속속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이라고 역설한다.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2000년 인류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인류 본사’에서 이 교수는 고대사부터 1만2천 년의 인류 역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꿰어낸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해가 뜨는 곳’이란 의미의 라틴어 ‘오리엔스(Oriens)’에서 유래한 ‘오리엔트(Orient)’는 오늘날 터키 공화국의 영토인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을 발아시킨 역사의 본토였다. 중동(中東)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기반으로 신화·문자·정치·기술 등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온갖 문물을 창조해낸 문명의 요람이었다.

나아가 오리엔트-중동은 인간사회가 등장하고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만2천 년 동안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온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중심지였고, 6천400 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과 서양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주며 교류 발전을 주도한 문명의 핵심 기지였다.

저자는 ‘중양(中洋)’의 눈으로 역사를 다시 읽는 것이야말로 인류문명의 완전판을 탐독하는 획기적 사건이며, 동·서양 이분법이 유발한 역사 왜곡과 인식 단절을 뛰어넘어 잃어버린 인류문명의 뿌리를 되찾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인류 본사’는 아나톨리아반도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인도아대륙,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까지 아우르며 이 일대에서 일어나고 스러졌던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통해 오리엔트-중동 세계의 1만2천 년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복원해냈다.

발굴과 동시에 역사학의 근간을 뒤흔든 아나톨리아 문명을 시작으로 오리엔트 문명의 주요 제국들을 선명히 조명함으로써 ‘척추가 끊어진 채 전해져오던’ 인류사의 뼈대를 바로 세운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상대주의적이고 현지 중심적인 관점으로 그곳만의 독특한 지리적 환경과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그려내는 저자의 답사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수천 년 전 유적지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200여 장에 달하는 컬러 사진과 지도 또한 현지의 기운을 한껏 또렷이 전달한다. 생경하기만 했던 오리엔트-중동 문명을 국내에 오롯이 알리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저자의 기념비적 역작으로 손색이 없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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