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태수필가
조현태
수필가

며칠 전, 아홉산 숲에 다녀왔다. 규모가 약 오십삼만 평방미터에 달한다고 하니 수목원을 방불케 한다. ‘아홉 봉우리’에서 이름 지어진 이 독특한 숲에는 적송, 편백나무, 삼나무, 서어나무, 맹종죽 등이 무리지어 있다. 개인명의(남평문씨)로 조성되고 가꾸어 왔는데 현재는 ‘아홉산 숲 사랑 시민 모임’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고 대표되는 수종이 대나무였다. 대나무는 땅속줄기(뿌리 줄기)에 마디마다 뿌리와 싹을 갖추고 있다가 삼사 년이 지나면 싹이 자라나온다. 성장 속도는 점차 가속된다는데 땅 밖으로 나타날 무렵에는 하루에 몇 센티미터 정도이다가 최적의 성장환경이 되면 일 미터를 넘게 자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죽순에 모자를 걸어놓고 이틀만 지나도 그것을 내릴 수 없는 높이로 올라가 있다고 한다. 대나무는 외떡잎식물로 관다발은 있으나 부름켜가 없어서 몇 년을 자라도 굵기와 높이는 성장하지 않고 단단히 굳어지기만 하기 때문에 나이테가 없다. 보통 나무들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죽순은 약간의 독성이 있다는데 종족번식을 위한 자신의 방어기전일 수도 있겠다. 죽순과 껍질에는 니아신, 나트륨, 레티놀, 베타카로틴, 단백질, 각종 비타민과 식이섬유 등이 함유되어 있어 훌륭한 식재료 중의 하나다. ‘죽순껍질 차’도 있다는데 구입해 마셔보고 싶다.

오늘은 대나무 예찬보다 죽순껍질을 말하려고 한다. 대나무가 두어 달 자라면 성장을 멈추고 껍질을 떨어뜨린다. 죽순에는 줄기 자체에 보다 껍질에 더 많은 생장호르몬이 들어 있다. 생장호르몬이란 세포를 분열시키고 분열 된 세포를 크게 자라도록 하는 물질이므로 죽순에서 껍질을 제거해 버리면 자라지 못하여 난쟁이 대나무가 된다. 또 죽순 겉을 싸고 있는 껍질은 연한 본체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인간에게 ‘부모’란 죽순의 껍질과 같아야 한다. 좋은 가르침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자식이 다치거나 어긋나지 않도록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어릴 때일수록 밀착하여서 보호막 역할을 하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자식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성장하여 독립할 때까지면 족하다. 그 시기는 이십대 초반쯤이 아닐까 한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 귀한 줄 모르겠냐만 소중할수록 스스로 터득하고 단단해지도록 그 길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는 듯하다. 과잉보호나 도를 넘는 간섭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사람도 자신의 자식만은 예외인 듯 놓아주지 못하는 전형적 내로남불 형식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본다. 부모의 시각에서 보면 모든 자식은 왠지 서툴러 보이고 힘겨워 보인다. 왜냐면 성장기를 거쳐 온 사람과 이제 성장기에 다다른 사람의 차이니까. 결론은 부모와 자식 간에 차이가 나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냥 지켜보지 못하는 애착심이 발동하면 자식이 부모의 궤도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희석된다.

대나무 껍질이 떨어지지 않고 마디마디 달라붙어서 감싸고 있으면 이미 대나무 모습이 아니다. 매우 볼썽사납고 거추장스럽다. 깔끔하게 물러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