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사랑의 고고학’ 주연 옥자연
‘경이로운…’·‘마인’ 등으로 대기만성
“감정 공유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영화 ‘사랑의 고고학’ 주연 배우 옥자연.
영화 ‘사랑의 고고학’ 주연 배우 옥자연.

영화 ‘사랑의 고고학’의 주인공 영실(옥자연 분)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느라 손해를 보고 살아가면서도 어떨 땐 자기 주관이 강하다. 누가 짜증을 내면 “나 때문 아니지?”라고 확인받을 정도로 주변을 신경 쓰지만, 자신이 쉬고 싶을 땐 강사 제의도 미련 없이 사양하는 식이다.

지난달 28일 개막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에 진출한 이 작품은 영실이 오랜 시간이 걸린 연인과의 이별을 마무리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생’(2009), ‘누에 치던 방’(2016) 등을 선보인 이완민 감독이 연출했다.

최근 전주 영화의거리 한 카페에서 만난 옥자연은 “영실은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중심을 잡으며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사람”이라며 “답답하고 한숨이 푹푹 나오겠지만, 사회가 정형화한 대로 살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희망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실의 이런 성격은 연애에서도 잘 드러난다. 만난 지 8시간밖에 되지 않는 연상의 남자 인식(기윤)에게 반해 곧바로 교제를 시작한다. 그러나 연인 사이가 된 후 끊임없이 가스라이팅 하는 인식 때문에 자기를 검열하고, 헤어진 다음에도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다.

“연기를 하면서도 스트레스받더라고요. 어떨 땐 화가 치미는데 극 중에서 표현할 수가 없으니까요. 감독님한테 ‘연기하기 힘들어요. 영실이도 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도 한 적 있어요. 하하.”

이 감독은 영실 역을 맡을 배우를 찾던 중 옥자연이 생각에 잠겨 고요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서 캐스팅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옥자연은 “감독님이 촬영에 들어가서는 영실이가 점점 생명력을 잃고 꺼져가는 과정이 보이면 좋겠다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영실과 인식이 애매한 관계를 지속한 지 8년, 영실은 드디어 “내 8년 돌리도!”를 외치며 기나긴 이별을 마무리한다.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사람에 먼저 다가가 사랑을 시작하기도 한다.

옥자연은 고고학자라는 영실의 직업에도 흥미를 느꼈다며 “영화인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했다. 특히 영실이 학생들에게 고고학자에 관해 설명하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지낼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 공감했다고 한다. 그 역시 스물다섯 무렵 대학로에서 연극을 시작하고 이후 영화 단역을 하면서 이런 과정을 거쳤다.

“무명 시절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전 별로 힘든 적이 없었어요. 연극 하는 사람 모두가 가난하기 때문에 우리끼리 비교할 일도 없고, 무대에 연극을 올리는 게 너무 재밌었으니까요. 영실이 돈 생각 안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요.”

그러다 그는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악귀에 씐 백향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대중에게 배우 옥자연을 각인시켰다. 이후 tvN 드라마 ‘마인’을 통해 모성애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고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 ‘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에서 활약하고 있다. 연기를 시작한 지 꼭 10년 만이니 대기만성이다.

“운이 진짜 좋았던 것 같아요. ‘경이로운 소문’에 캐스팅된 것도, 그 역할이 사랑받은 것도요. 아무리 많이 출연해도 드라마가 잘되지 않으면 배우도 드러나지 않는 건데 ‘마인’도 마찬가지로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그냥 뭣도 모르고 열심히만 했을 뿐이에요.”

그는 인기를 얻은 지금도 “2년에 한 편 정도는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며 “연극도 놓지 않고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독립영화와 연극은 다른 매체보다 캐릭터에 더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옥자연은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말에 한참을 고민하다 “연기를 잘하고 싶은데….”라며 웃었다. “‘같이’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동료 배우와 함께 호흡하고, 관객이나 시청자에게도 위로든 응원이든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요. 배우로서 가장 보람 있다고 느낄 때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작품을 통해 이해시킬 때더라고요. 좋은 감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 그게 좋은 배우가 아닐까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