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코로나19의 선물 가운데 하나는 세계의 다채로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객들로 만원이 되곤 했던 2020년 이전의 대형 영화관들은 장삿속에 혈안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윤이 남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주로 수입하여 배급했다. 복합 상영관이라는 것은 말뿐이고, 실제로는 잘 팔리는 서너 개 영화 일색이었다. 그런 상황이 코로나19 이후 일변하였다.

장삿속에 정신이 나가 있던 복합 상영관들이 정말로 다양한 영화를 세계 전역에서 수입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내가 본 영화는 대개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제작된 것이다. 프랑스, 에스파냐, 핀란드, 도이칠란트, 일본, 영국, 홍콩, 중국 등등을 들 수 있다.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소재 또한 폭력-속도-사랑-공상과학 일변도를 넘어서 우리의 현실과 상상력을 극대화한 경우가 많았다.

205명이 들어갈 수 있는 복합 상영관에서 핀란드 영화를 보았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라는 긴 제목을 가진 영화. 영화 제목에서 의도적으로 빠트린 어휘가 있다. 영어로 표기된 원제에는 있지만, 수입 과정에서 일부러 뺀 것 같다. ‘눈먼’이라는 어휘가 남자 앞에 있었건만, 수입사는 한사코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장애인 영화라는 걸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발성 경화증으로 가슴 아래 육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남자 야코가 주인공이다. 더욱이 그는 경화증의 결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아침마다 그를 깨워주는 다정한 문자 메시지가 멀리서 날아온다. 그가 사는 곳에서 천 km 떨어진 곳 사는 또 다른 여성 장애인 시르파다.

시르파는 혈관염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그녀의 소망은 바이오 생약 치료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항암치료가 필수적이며, 생약 치료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시르파. 야코는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그녀를 찾아가서 만나겠다고 마음먹는다. 다섯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야코는 충분히 시르파를 만날 수 있다.

장애인 택시를 타고 정거장으로 가다가 그가 운전기사에게 라디오 소리를 높여달라고 부탁한 다음 “자유다!” 하고 외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면 당연한 것으로 느끼는 이동의 자유와 권리가 야코 같은 중증 장애인에게는 사후의 낙원이자, 그림 속의 성찬일 따름이다. 자신의 차폐된 공간을 벗어나 모험을 강행하는 야코가 공중에 대고 소리치는 ‘자유’는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던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자유의 이면에는 그것을 위해 스러져간 수많은 선배 투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공기처럼 물처럼 차고 넘치는 값싼 물건인 양 당연시한다. 영화를 보면서 장애인들이 매일 겪는 장벽과 차별과 슬픔이 느껴진다. 그러니 생각해보자. 세상에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