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산에서 내려와서
아파트촌 벤치에 앉아
한 조각 남아 있는 육포 안주로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아 행복하다!
나도 모르겠다
불행 중 다행일지
행복감은 늘 기습적으로
밑도 끝도 없이 와서
그 순간은
우주를 온통 한 깃털로 피어나게 하면서
그 순간은
시간의 궁핍을 치유하는 것이다.
시간의 기나긴 고통을
잡다한 욕망이 낳는 괴로움들을
완화하는 건 어떤 순간인데
그 순간 속에는 요컨대 시간이 없다
술 한 잔 하고 “지하철을 타러” 갈 때 ‘기습적으로’ 닥치는 행복감은 우리도 자주 경험하는 감정이다. 시인은 바로 그 순간이 “우주를 온통 한 깃털로 피어나게” 한다고 말한다. ‘시간의 궁핍’을 치유하는 것은 행복감이 “밑도 끝도 없이” 밀려드는 어떤 순간이다. 이 “시간이 없”는 ‘순간’은 시간에 사로잡힌 삶을 치유한다. 그 순간은 우주를 가볍게 피어나게 하며, 우리들이 그 우주와 즐거이 교통할 수 있게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