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나혜석(1896-1949)의 단편소설 ‘경희’(1918)의 주인공 경희는 러시아 최초의 여성 혁명가 베라 자수리치(1851-1919)를 떠올리게 한다. 귀족 집안 출신의 지식인이자 사회운동가 베라는 페테르부르크 경시총감 트레포프 저격 사건으로 수감된다. 만년의 투르게네프(1818-1883)는 그녀를 염두에 두고 산문시 ‘문지방(Porog)’(1878)을 쓴다.

문지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베라는 선택의 기로(岐路)에 선다. 이쪽은 교양, 세련, 안락, 계몽, 행복, 가문 같은 우아함이, 저쪽은 무지몽매, 야만, 가난, 질곡, 투쟁, 배신 같은 악덕이 자리한다. 목소리가 베라에게 묻는다. ‘문지방을 넘겠느냐?’ 그녀는 넘겠다고 답한다. 마침내 담대하게 문지방을 넘은 그녀에게 두 목소리가 들린다. “성녀(聖女)!”와 “바보 같은 년!”

어쩌면 식민지 조선 여성 가운데 나혜석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장 많이 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양화가, 진보적 여성운동가, 소설가이자 문필가 등등. 1921년 ‘매일신보’에 실린 시 ‘노라의 집’은 나혜석의 직선적이고 노골적인 선언문이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수하게 /엄밀히 막아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나주게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저”

아내이자 어머니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살아가려는 그녀의 강고한 의지가 빳빳하게 드러난 절창이다.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해야 했던 여성의 운명을 정면으로 거부한 나혜석. 그녀는 그것을 사람이 되는 ‘신성한’ 의무라고 규정한다. 이런 당찬 포부와 인생관으로 무장한 여성 나혜석.

경희는 나혜석의 자화상이다. 1918년 당대의 엄격한 가부장제와 고루한 결혼관, 교육받은 신여성을 바라보는 세상의 냉담한 시선과 정면으로 싸우고자 했던 경희. 그녀의 투쟁대상은 일차적으로는 아버지와 친인척이며, 나아가 여성의 구실과 사회활동을 차갑고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던 식민지 조선 사회 전체였다.

그녀보다 이른 시기에 러시아의 진보적 여성 혁명가 베라는 사회개혁과 인간의 길을 열기 위해 질곡의 길을 선택한다. 경희 역시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사회와 가족들의 인식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여성상을 선보인다. 그들의 풍찬노숙과 신산(辛酸)한 삶의 여정을 돌이키면서 2022년 우리 사회와 세태를 생각하노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든다.

남학생들보다 높은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 활발한 사회진출과 성과가 우리 앞에 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허다한 난제가 있지만, 100년 전 식민지 조선 사회와 비교하면, 아니 50년 전인 1970년대와 비교하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진보와 혁명에는 피와 눈물과 땀이 서려 있다. 안나 카레니나가 베라 자수리치와 노라 헬메르를 거쳐 다시 이경희로 옮아가는 경이로운 계보를 새삼 확인하는 새해가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