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 어린아이가 반듯이 누워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 /송미경 씨 제공

사람이 잠을 자는 시간은 하루 8시간 정도이다. 인생의 1/3이나 잠을 자는 셈이다. 백 년도 못 사는 유한한 삶에서 그만한 시간을 무의식으로 보낸다니, 낭비도 이러한 낭비가 없다. 잠만 없다면 얼마든지 인생을 즐길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고단한 우리네 인생에서 잠만큼 달콤한 것이 없다.

우리말은 잠도 여러 갈래로 나누었다.

때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나누고 깊이에 따라 나눈다. 모양에 따라 비유해 이름만으로도 잠자는 모습이 그려진다. 잠의 종류를 음미해보면 다시 느끼게 된다. 어느 언어가 이처럼 세밀하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우리말의 표현력은 알면 알수록 놀랍다.

개잠 : 개처럼 머리와 팔다리를 오그리고 옆으로 누워 자는 잠.

겉잠 : 겉눈을 감고 자는 체하는 잠. 선잠.

괭이잠 :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면서 자는 잠. 노루잠.

굳잠 : 아주 깊이 드는 잠. 귀잠.

그루잠 : 깨었다가 다시 드는 잠. 두벌잠.

꾀잠 : 거짓으로 자는 체하는 잠.

꿀잠 : 꿀맛처럼 달콤한 잠. 단잠.

나비잠 : 어린아이가 반듯이 누워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

낮잠 : 낮에 자는 잠.

노루잠 : 자다가 자꾸 깨어 깊이 들지 못하는 잠. 괭이잠.

늦잠 : 아침 늦게까지 자는 잠.

단잠 : 깊이 달게 자는 잠. 곤하게 든 잠.

도둑잠 : 자지 않아야 할 시간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자는 잠.

도적잠 : 자는 시간이나 곳이 아닌데, 사람의 눈을 피하여 살짝 자는 잠.

돌꼇잠 : 누운 자리에서 빙빙 돌며 자는 잠.

두벌잠 : 한 번 들었던 잠이 깨었다가 다시 드는 잠. 개잠.

등걸잠 : 옷을 입은 채 아무 데서나 나뒹구는 잠.

말뚝잠 : 앉은 채로 자는 잠.

발칫잠 : 다른 사람의 발치에서 자는 잠.

발편잠 : 발을 죽 펴고 편안하게 자는 잠.

밤잠 : 밤에 자는 잠.

사로잠 :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는 잠.

새벽잠 : 새벽에 깊이 드는 잠. 아침잠.

새우잠 : 새우처럼 모로 누워 몸을 구부리고 자는 잠. 시위잠.

선잠 : 깊이 들지 않은 잠. 겉잠. 여윈잠. 수잠.

속잠 : 깊이 든 잠.

수잠 : 깊이 들지 않은 잠. 선잠. 여윈잠.

시위잠 : 활시위 모양으로 웅크리고 자는 잠. 새우잠.

아침잠 : 아침에 자는 잠. 새벽잠.

안잠 : 남의 집에서 그 집 일을 해 주고 그 집에서 자는 일.

여윈잠 : 깊이 들지 못한 잠.

온잠 : 밤새 온전히 자는 잠.

이승잠 : 병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줄곧 자는 잠.

쪽잠 : 짧은 틈을 타서 불편하게 쪼그리고 잠깐 자는 잠.

칼잠 : 비좁은 방에 여러 사람이 잘 때, 한쪽 어깨만 바닥에 대고 옆으로 길게 뻗어 자는 잠.

풋잠 : 잠든 지 오래지 않아 깊이 들지 않은 잠.

한뎃잠 : 한데서 자는 잠.

한잠 : 한창 깊이 든 잠.

헛잠 : 자는 체하는 잠.

늘 불안한 노루처럼 자는 잠, 눈은 감고 귀는 살아 있어 고양이처럼 자는 잠, 자리가 비좁아서 모로 누운 칼처럼 자는 잠, 꼿꼿하게 박힌 말뚝처럼 앉아서 자는 잠,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등걸처럼 자는 잠, 실을 감고 푸는 돌꼇처럼 빙빙 돌며 자는 잠, 나비처럼 팔다리를 활짝 벌리고 자는 잠, 이처럼 우리말은 비유가 살아 있어 말만 들어도 어떻게 잤는지 알 수 있다.

- 쟤는 얼마나 피곤한지 등걸잠을 자더라.

- 노루잠을 잤어.

- 쪽잠이라도 청하세.

- 한뎃잠 잤더니 삭신이 쑤시네.

잠은 때와 곳을 가리지 않는다. 때에 따라 새벽잠, 아침잠, 낮잠, 초저녁잠, 밤잠이다. 곳에 따라 집 밖에서 자면 한뎃잠, 바깥잠, 남의 발치에서 자면 발칫잠이다. 목적에 따라 속이려면 헛잠, 꾀잠, 시간에 따라 나누어 자면 쪽잠, 두벌잠, 토막잠, 깊이에 따라 괭이잠, 단잠, 꿀잠, 풋잠, 여윈잠이다. 말만 들어도 잠을 잘 잤는지 못 잤는지 알 수 있다.

잠을 잘 여유가 많지 않은 세상이다. 잠을 줄이며 공부해야 하고 잠 안 자고 일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모자라는 잠을 채우려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데, 피로가 쌓였을 때 눈꺼풀은 역기보다 더 무겁다. 운전하다가 아주 가벼운 눈꺼풀조차 들어 올리지 못해 영원한 잠에 빠지기도 한다.

잠은 삶을 건강하게 하는 생물학적 장치이다. 언제 어디서든 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다. 일상의 스위치를 끄고 눈을 감아야 꿈을 꿀 것이 아닌가. 인간은 꿈꾸는 동물이고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므로. /수필가·문학평론가